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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계어 같은 대사의도적 눈가림무대…무대 위로 옮겨진‘어나니머스’의 生死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The Internet is Serious Business, 극작 팀 프라이스ㆍ연출 윤한솔)’를 보기 전 몇가지 알아둬야 할 ‘전문 용어’들이 있다.

먼저 ‘어나니머스(Anonymous)’. 익명을 뜻하는 단어로 컴퓨터 해킹을 정치적, 사회적 투쟁수단으로 사용하는 핵티비스트들의 국제적 점조직. 두번째, ‘룰즈섹(LulzSec)’. 온라인에서 웃음을 표시하는 ‘LOL(Laughing Out Loud)’과 ‘보안(Security)’의 합성어로 ‘보안을 비웃는다’는 뜻. 2011년 소니를 공격하며 이름을 알린 해커그룹의 이름이다. 


이 정도 용어만 알아둔다면 객석에 앉아도 좋다. 어차피 더 많이 안다해도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일단 너무 빠르다. 마치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서 글이 올라가는 것처럼, “오픈 브라켓(Braket), 클로즈 브라켓…콤마, 오픈 브라켓, 클로즈 브라켓…세미콜론” 같은 태그 용어들을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쏟아낸다.

대사를 알아 듣기 힘든 것은 물론, 무대를 한 눈에 볼 수도 없다. 익숙한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나 무대와 같은 높이로 배치된 의자에서는 러닝타임 1시간 40분 내내 내 앞에 앉은 관객의 뒤통수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황 유발. 그것이 이 연극이 의도한 바다.

공연장에서 만난 연출가 윤한솔은 “대사 한줄 한줄 이해하는 것보다 감각적인 속도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디시인사이드 같은 곳에 들어가면 인기 시간대 인기 글에 붙는 댓글의 속도가 엄청나다”며 “현실과는 너무 다른 온라인 세상의 공감각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관객이 대사를 못 알아듣는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

그는 객석에서 무대가 온전히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의도적인 시야장애”라고 말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이 모니터 영상으로 보이고, 모니터 앞에 있는 모습이 다시 무대 위 영상으로 보내지는데, 어떠한 정보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관객은 선택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이즈…’는 해커그룹 어나니머스의 생성과 룰즈섹의 붕괴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의 기획 시리즈 ‘두산인문극장’이 올해 ‘모험’이라는 타이틀로 3월 25일부터 6월 25일까지 세 개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 중 마지막 작품이다. 앞서 두산인문극장은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 ‘게임’ 등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로 호평을 받았다.

‘인터넷 이즈…’는 이른바 ‘핵티비스트들’의 실화를 담고 있다. 사이언톨로지교에 맞선 ‘작전명 채놀로지’, 튀니지, 바레인, 이집트 등 독재정부의 감시망을 다운시킨 ‘작전명 튀니지’ 등을 비롯해, 폭스닷컴, FBI 해킹, CIA 디도싱 등 실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들은 검열에 맞서는 혁명가들인가, 아니면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범죄자들인가.

연출가는 “혁명인가 범죄인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건 ‘댁’들의 기준”이라면서.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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