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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신궁과 예루살렘은 동급? 회의 첫날부터 신궁 미화에 나선 日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일본의 ‘조화’의 마음을 세계에.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현지에서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신도문화를 전파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6일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정식 회담에 들어가기 앞서 이세신궁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 이와 같이 보도했다. 26일 G7 정상들은 저성장을 달리고 있는 세계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 마련을 위해 모였지만 부각된 것은 이들의 신사 탐방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

신문은 현지인들이 “각국의 정상들이 모두 신성한 이세신궁에 참배(お参りㆍ<오마이리> 참배하다, 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신사, 절 다음 동사로 붙을 때는 ‘참배를 드리러 가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를 드러러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이세신궁이 예루살렘과 같은 국제적인 순례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이날 G7 정상들은 이세신궁을 ‘참배’하지 않고 단순 ‘방문’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이들을 영접하는 방식은 철저히 신도문화를 따르고 있었다.

이세신궁의 산도(參道ㆍ절이나 신사의 참배객을 위해 설치한 길)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 궁사(宮司ㆍ 신사에서 제사 등의 업무를 담당한 신관)로 추정되는 인물이 앞장섰다. 현지인들이 언론 취재에 “G7 정상의 이세신궁 참배를 보러왔다”고 말한 이유다. G7 정상들이 궁사를 따라 걷는 모습은 신관의 안내를 받아 집단 참배를 가는 일본 정치인들을 연상시켰다.

이세신궁 홍보실은 벌써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이세신궁 홍보실은 산케이에 이세시마 정상회의 개최가 결정된 지난해 6월부터 “해외 언론의 취재가 평소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일본인 생활과 정신을 대변하는 이세신궁의 역사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이세신궁의 영문표기도 ‘Ise Shrine’이 아닌 일본 발음인 ‘Ise Jingu’로 수정했다. 신사의 서무를 담당하는 궁장(宮掌)인 니시모토 준이치로(西本俊一朗)는 “세계에서 테러가 다발하고 있는 가운데, 종교와 종파와 관계없이 평화와 공생을 기원하는 장으로서 해외 방문객을 많이 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G7 정상들의 이세신궁 ‘참배 가능성’이 논란이 된 이유는 단순히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만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본 근대 정치사상인 ‘국체 원리주의’의 총본산인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일본의 전범사상을 인정하는 메세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신궁 ‘방문’ 자체도 주변국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이세신궁은 일본 왕실의 조상신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일왕의 기원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시는 신사다. 우리나라의 단군신앙의 유적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제정일치와 국체 원리주의를 주창한 일본 ‘천황신화’의 총본산이다.

일본의 막부시대 붕괴를 이끈 원훈(元勳)세력은 ‘천황’ 중심의 일본제국을 구축했다. 이후 패전으로 일본제국이 붕괴하면서 ‘일왕’(천황)을 인간으로 명시한 왕국을 유지했다. 이세신궁을 ‘참배’한다는 것은 ‘인간’ 선언을 한 일왕의 조상을 ‘신’으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참배는 단순 문화적인 행사로 치부할 수 있지만, 세계 경제의 46%를 주름잡는 G7 정상들이 일본의 전통 참배양식인 ‘미카키우치 참배’를 드린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논란을 일으킬 공산이 컸다.

G7 정상들의 이세신궁 방문을 단순한 문화행사로 인식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를 건설한 원훈 세력 때문이다. 원훈 세력은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의 사회적 통합과 일왕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신민(臣民)통치를 위해 이세신궁을 일왕숭배의 상징물로 적극 활용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는 일본 제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제 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인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를 마련하고, 제국주의의 핵심사상인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주창하면서 이세신궁을 참배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다섯 차례 이세신궁을 참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도 유명한 일화는 러ㆍ일 전쟁 개전 때와 다이쇼 일왕이 왕세자였을 당시인 메이지 40년(19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해당 일화는 ‘이세신궁에 국가 번영을 기원하면 그대로 이뤄진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이세신궁이 일본 보수세력의 ‘성지’(聖地)라고 불리는 이유다.

munjae@heraldcorp.com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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