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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7주기] ‘봉하’, 야권 부침을 관통한 기록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2009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매년 5월 23일은 야권의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때론 승리를 외치는 결의가, 또 때론 패배를 곱씹는 분루(憤淚)가 흘렀다. 선거 전후와 겹친 5월이란 시기도 묘하다. 5ㆍ23을 통해 잠룡의 출사표가 나오는가 하면, 정쟁의 씨앗이 움트기도 했다. 5ㆍ23의 7년사는 지난 7년 간 야권의 부침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요약본이다.

지난 2010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는 서거 당시의 추모 열기가 잔열을 품고 있을 때다. 천안함 사태가 터지고, 제5회 지방선거를 불과 6일 앞둔 때였다. 당시 이해찬 전 총리는 추모사에서 “우린 해야 할 일을 향해 뚜벅뚜벅 가겠다”고 했다.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북풍이 변수로 떠올랐으나, 1주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일면서 이를 상쇄했다. 


추모열기는 6일 뒤 선거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나라당 전통 기반으로 여겼던 강원도나 경상남도 등에서 야권이 승리하는 등 이변이 속출했다. 한나라당은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2주기였던 2011년 5월 봉하마을은 19대 총선ㆍ18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총집결한 자리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총선,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힘을 모으는 과제가 남았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내년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3주기는 올해와 가장 비슷한 구도다. 총선 직후 열린 추모식이자, 대선을 코앞에 둔 때였다. 당시 5ㆍ23은 ‘잠룡’ 출정식을 방불케했다. 잠룡이 총집결하는 올해와 유사하다. 지방선거, 총선을 거치면서 친노계가 최대 계파로 부각된 시기였고, 문재인 고문은 유력한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문 당시 고문은 봉하마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제 그 분을 놓아드리고 그 분을 뛰어넘어야 할 때”라며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고도 했다. 친노(親盧가 아닌 친문(親文)의 정치가 시작된 시점도 이날 5ㆍ23부터다. 


대선 패배 이후 맞이한 4주기는 침통함이 흘렀다.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고, 비노계인 김한길 당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직후 맞이한 5ㆍ23이다. 추모식에 참석한 야권 인사 사이에선 “가치로서의 친노는 계속되더라도 정치세력으로 이제 친노는 무의미하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이 당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분주하게 창당 행보를 이어갔다. 대선 패배 이후 야권 정계개편이 거론됐고, 봉하마을에서 문 의원은 “안철수 신당,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을 보탰다. 5ㆍ23을 통해 재차 이 같은 흐름은 확인된 셈이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안 의원은 김한길 대표와 합당을 선언하게 된다.

5~6주기는 각각 세월호 참사, 야권 계파갈등 위기 등과 맞물려 있었다. 두 행사 모두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5주기에선 세월호 참사 여파로, 지난해 열린 6주기에선 야권 계파갈등이 고조된 탓이다.

그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 씨의 추모사는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노 씨는 “사과도 반성도 필요없다. 나라 생각 좀 하시라”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면전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고, 이를 두고 더민주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오는 23일 열릴 7주기는 여소야대 이후 첫 추모식이다. 제1당으로 올라선 더민주로선 세를 과시할 기회이고, 계파에 반발해 분당한 국민의당은 다소 미묘한 입장에 놓였다. 3당체제 여파, 내년 대선 등이 7주기의 주요 화두가 될 전망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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