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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長考끝에 妙手가 나올 수도 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에게 시즌은 밀당과 애증의 복합체다. 겨우내 개막만 애타게 기다리다가도, 정작 시즌이 시작되면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다.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게 일상이다. 강팀의 팬은 한결 낫다. 기뻐하는 날이 속상해할 날보다 더 많을테니…. 하위권팀 팬들은 패배가 일상이다, 1득점에 기뻐하고, 연패에 달관하다 종국엔 승패를 초월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다. 그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심지어 총각때 우승을 맛본 팬이 결혼후 낳은 자식이 대학생이 되도록 트로피 구경을 못한 팀도 있다. 그팀 팬들은 성인과 동급으로 불린다. 우리로 따지면 구한말 이후 108년간 우승못한 시카고 컵스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지난해 야구장을 찾은 팬들은 760만명에 이르며, 올해는 8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야구장을 찾는 팬이나, TV중계를 보는 팬들 중 열에 아홉은 맥주와 치킨을 벗삼아 지낼 것이다. 야구가 목적인지, 가족 친구와 치맥을 즐기는게 목적인지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야구팬에게 야구와 치맥은 동의어와 다름없다. ‘별그대’ 천송이보다 훨씬 오래된 전통이다. 

야구팬들은 불과 얼마전 이렇게 소중한 ‘야구장 맥주’를 빼앗길 뻔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이 돌연 야구장 ‘맥주보이’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주세법에 어긋나고 청소년들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야구장에 가면 맥주보이가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된 것일까. 의아했다. 맥주보이는 이미 지난 2003년 첫 등장했고, 13년간 야구팬과 함께 했다. 신중한(?) 결정을 내린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가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미국과 일본은 위험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웬만한 스포츠경기장에는 다 맥주판매가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 역시 아무런 규제없이 판매되고 있는 맥주가 유독 한국에서만 문제가 된 것이다.

당연히 야구팬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야구문화 하나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분확인이 어렵다면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하면된다. 맥주보이의 고충을 염려해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건 빈대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것 아닌가. 야구팬들의 반발에 당황한 관계부처는 나흘만에 금지조치를 철회됐다. 전례없이 빠른 조치다. 그나마 다행이다. 공무원들은 도장 하나 찍으면 시행령이 만들어진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실상을 파악하지 않고 만든 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여파로 ‘안전불감증’이 이슈가 되면서, 7월 느닷없이 광역버스 입석금지 조치가 시행됐다. 분초를 다퉈 출근해야하는 직장인들의 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좌견천리(坐見千里) 행정에 수도권 통근자들은 모르모트가 되었고 정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한달여만에 조치는 철회됐다.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항상 우리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떤 계기로 ‘제2의 맥주보이 해프닝’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법을 만들고 없앨때 부디 신중해주길 희망한다.長考한다고 惡手만 나오는건 아니다. 김성진

논설위원withyj2@heral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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