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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욱! 엄마가 무서워요 ②] “그냥 속에서 불나요”…‘버럭’ 중년여성 늘었다, 왜?
-혼자 있을 땐 한숨만, 가족에게는 화풀이
-갱년기가 불러오는 중년여성의 대위기
-가족간 대화와 배려로 슬기롭게 풀어야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그냥 어느날부턴가 남편 얼굴 꼴도 보기 싫고, 자식들도 그냥 귀찮아요.”

전업주부인 박모(54) 씨 남편은 중소기업 사장이다. 남들은 ‘남편이 돈 잘버니까 좋겠다’라고 한다. 예전엔 그런 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은근히 남편이 사장이라는 점을 자랑하기도 했다. 근데 요즘은 아니다. 남편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싫고, 뒤통수를 쳐다보기만 하면 성질이 난다. 군대 갔다온 대학생 아들을 봐도 그렇다. 학교 가는 날 빼면 빈둥빈둥 방안을 뒹구는 아들이 밉상이다.

어느날, 저녁 밥상에서 가족이 모였고 특정 화제가 입에 올랐을때. 괜히 짜증이 났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둘을 향해삿대질도 했다. 남편도, 아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처럼 화를 폭발하는 중년여성이 주변에서 늘고 있다. “아내가 최근 이유없이 화를 낸다”, “엄마가 갑자기 무서워졌다”는 남편과 자녀들의 얘기를 흔치않게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정작 그 이유를 본인도 모르고, 가족도 모른다는 것이다.

욱! 하고 화를 내는 중년여성이 늘고 있다.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분노의 표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냥 이유없이 화가 나고, 이유없이 싫어지는 일이 잦다고 상담을 하러 온 중년여성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가정과 사회의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중년 여성의 욱질(?)은 갱년기라는 신체 생애주기의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신체적 변화는 불안감을 가져오고 여성호르몬의 감소는 정서적 안정을 주관하는 뇌를 방해한다. 운동과 식이요법와 함께 약물치료와 정신과적 치료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의학적으로 여성의 폐경기는 연령이나 체질ㆍ영양상태 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평균 44세에서 52세 사이에 나타난다. 갱년기의 대표적인 신체적 증상은 ‘안면홍조’다. 안면홍조는 얼굴이나 목, 머리와 가슴 부위의 피부가 갑자기 붉게 변하면서 전신의 불쾌한 열감과 발한이 동반되는 상태. 갱년기 여성의 약 75%는 안면홍조를 경험한다. 신체적 변화가 불쾌감을 야기하다 보니 이것이 ‘분노’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은영(27) 씨는 “지난해 9월부터 평소에는 나긋나긋하게 말씀하시는 엄마가 혼자 ‘덥다’, ‘열난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시더니 가을이 시작하는 데도 엄마 때문에 에어컨도 매일 틀고 그랬다“며 “이후 나나 아버지에게 화를 내시고 해서 우리 가족원 모두 당시에는 많이 당황했는데 지나고보니 그게 갱년기 증상이었다”고 했다.

신체적 변화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일련의 변화들을 겪는다. 두통이 심해지며, 기억력이 감퇴돼 심할 경우 초기 치매와 구별이 어렵다. 또한 우울증과 고립감을 느껴 불면증을 얻기도 한다.

이동은 프렌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난소 기능이 사라지게 되면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저하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의 부족해지면 간뇌의 자율신경중추의 균형을 깨지면서 정서적 불안감을 야기한다”고 설명한다.

갱년기 여성의 정서적 불안은 자칫 가족 간 대화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달 초에 다 같이 가족여행으로 베트남에 가기로 했다는 이기우(27) 씨는 “처음에는 좋아하시는 것 같았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에는 안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또 그 다음날에는 여행을 준비 한다며 들뜨는 등 감정 기복이 심했다”며 “여행 당일에는 갑자기 ‘내 팔자에 무슨 여행이냐’며 안간다고 화를 내셔서 가족 분위기가 엉망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당사자인 중년 여성들이 자신의 심리적 변화를 스스로 알아채지 못 한 채 가족들과의 갈등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박정수(30) 씨는 “식당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동료 조리사 분이 ‘어머니께서 하루종일 한숨만 쉬고 어느 날은 울기도 한다’고 알려와 깜짝 놀랐다”며 “아버지가 그 이유 물어봐도 ‘알아서 뭐할 건데’라는 식으로 대화를 거부하면서 요즘은 집안에 정적만 흐른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했다.

최강현 부부행복연구원 원장은 “갱년기에 접어들면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같은 시기 남성도 남성호르몬 저하로 만사에 의욕을 잃게 된다”며 “서로 대화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필요하다면 약물과 의사 상담 등 적극적인 치료도 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생각 ▷꾸준한 운동 ▷규칙적인 식습관 ▷금주 등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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