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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조선산업 르포] 세계 조선1위 역군 옛말…지금은 일자리 걱정 뿐
-대규모 감원설 나도는 울산ㆍ거제 조선업계 불안감만 가득

-수주절벽에 협력업체 직접적인 타격, 노사간 시각차, 지속된 불황으로 인근 상권 초토화

[헤럴드경제=윤정희(울산ㆍ거제) 기자] “회사가 (감원설을) 흘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구조조정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노조가 반발했는데도 많이 짤랐다. 아마 이번는 엄청나게 인력감축할 것이다”

대규모 감원설이 퍼진 지난 22일. 현대중공업 플랜트사업본부 인근에 울산시 방어동의 한 식당에서는 점심시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한참 잘나갈때 경영진들이 잘못하고서,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현장에서 수천명을 짜른다는 게 말이 안된다. 1분기 매출도 흑자가 났다면서 회사가 너무한거 아닌가?”

국내 최대 조선산업지역인 거제시. 정부의 조선업종 구조조정안으로 조선 ‘빅3’ 통폐합설이 나돈 거제시 옥포1동 대우조선해양 오션플라자 인근 식당가는 금요일 주말인데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술집과 노래방은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 문을 닫는 곳이 늘었다.



협력업체 감원설이 퍼진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인근 식당가도 마찬가지. “안전, 안전, 환경, 환경하면서 삼성전자식 혁신을 해야한다고 할때는 언제고, 이제는 손쉽게 협력업체 직원들부터 자른다니. 지난해부터 협력업체 직원들이 많이 줄었는데 1만2000명을 또 줄이라면 말이 않되지.” 삼성중공업 사내 협력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근로자들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절망적인 현실을 원망했다.

울산과 거제지역 조선산업 근로자들, 한때 세계 최강 조선국가의 주역으로 자부심이 높았던 이들. 국가와 언론도 이들의 공로를 한껏 추켜세웠다.

하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현재 이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토론을 벌이는 공통 이유는 ‘감원설’ 때문이다. 인력을 감축해서 사업구조를 재편하겠다는 회사측의 계획이 흘러나오자 이에 대한 반감에서다. 감원은 결국 근로자들의 입장에선 평생, 목숨과도 같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안전모와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근로자들의 눈빛에선 불안감과 경계를 알리는 시그널이 감지됐다.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오면서도 가족들과 문자를 주고 받으며 괜찮을거라고 다독인다. 가족들이 대규모 인력 감원이 곧 있을거란 괴소문에 걱정스런 문자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수주절벽에 협력업체 직접적인 타격=이날 찾아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예상과는 달리 해양플랜트 공장을 포함한 10개 도크가 현재까지는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내후년까지 인도해야 할 선박이 아직 123척 가량 남아있기 때문에 토요일인 23일에도 근로자 1만여명이 출근해 휴일특근을 실시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착공해야 하는 선박은 단 1척에 그쳐 ‘수주절벽’이 심각한 상황이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매년 건조착공 선박이 50척 이상은 돼야한다. 현대중공업의 1분기 선박수주는 총 3척, 말도 안되는 ‘수주절벽’ 상황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쪽은 사외 협력업체다. 현대중공업의 1차 밴드는 최대 3000개가 넘었지만 2013년 초부터 시작된 ‘한파’로 절반이상이 이곳을 떠났다. 폐업을 했거나 업종을 전환해 타지로 옮겨갔다.

사내 협력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50개 업체, 근로자 수가 3만2000명에 달하는 사내 협력업체도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들은 사측이 기성금액을 줄인 탓에 임금체불과 4대보험 체불이 가중되고 있다며 조만간 울산시장을 만나 대책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사내 협력업체 관계자는 “2013년부터 기성금액이 깎여 퇴직금 4억여원과 4대 보험이 체불돼 매달 수천만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조선소 인근 상권도 초토화=오후 9시 현대중공업 사외 협력업체 직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울산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 평소 같으면 ‘불금’을 맞아 노래방과 음식점 등이 근로자들로 북적여야 할 시간이지만, 불이 꺼진채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류배달업을 하는 최모(48세)씨는 “식당과 노래방이 하루에 하나씩 문을 닫는 상황이다”면서 “주류 배달차량이 갈 곳이 없어 노상에 대놓고 쉬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 전하ㆍ방어동 일대 상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7ㆍ여)씨는 지난달부터 매출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박씨는 “저녁 회식이 아예 없다 보니 막걸리집 소주가계 등 주변 음식점도 문 닫은 데가 많다”며 “밥을 대먹던 하청 소장의 발길이 끊어져 며칠동안 보이지 않으면 협력업체가 떠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근 D자동차 정비업체 사장 이모(45)씨도 “예전에는 차에서 소리만 나도 돈을 들여 정비했는데, 지금은 아예 돈을 쓰지 않는다”면서 “왠만하면 타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면 물어보고 그냥 갈 정도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 시세도 추락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사업본부가 있는 동구 방어동 꽃바위 아파트 주변 원룸은 공실로 넘쳐나고 있다. 이 일대에서 복덕방을 운영하는 김모(63)씨는 “몇년전까지는 원룸을 찾는 사람이 많아 주인이 큰소리칠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된 상태로, 매매는 아예 끓겼으며 발빠른 원룸주인들은 월세를 50만원에서 35만원까지 내렸는데도 방이 나가지 않는다”며 “언론이 너무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공포심에 경기가 더 나빠지고 원룸을 팔겠다는 사람도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불만을 표했다.

▶수주절벽 현실에도 노사간 온도 차=현재 직면한 수주절벽 상황을 바라보는 현대중공업 노사간 시각차는 분명했다. 근로자들은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대규모 ‘감원설’ 등 닥쳐 올 위기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에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노조반발로 1500명 감원에 그친 회사측이 정치권에 편승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려고 고의로 위기설, 감원설을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팽배하다.

노조측은 현재의 위기를 사측의 경영실책 탓으로 돌렸다. 노조측은 “2012년 조선경기가 좋을 때 설계인력을 지나치게 줄이고 선종을 다변화하지 못하는 등 경영실책이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내달 4일 출정식을 시작으로 정상적으로 임단협 교섭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올해 기본급 6.3%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노조측에 협력을 요청했다. 한 임원은 “노조 등은 사내 유보금을 풀어 위기에 대처하라고 하지만 현재 유보금은 12조4000억원 정도로 이중 현금은 한 달 운용자금에도 못 미치는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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