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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요즘 군대, 요즘 군인
겉으로는 위문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기대한 건 다른거였다. 남들은 못가는 은밀한 곳에서의 즐거움. 고속버스 속에서 내내 실실 웃음이 배나왔다. 동행하는 친구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가 봐. 그럼 알거야” 그는 재취업을 준비중인 실업자다. 불과 두어달 전만해도 별 두개를 바라보던 친구다.

속초 터미널에 도착하니 친구가 반갑게 맞는다. 그는 사단장이다. 근데 뭘 타고 왔을까? 지프일까? 별판은 달고 왔나? “저기 가서 택시 타자. 휴일날 군용차는 못 써. 내 차는 집사람이 타고 나갔고…”

시작부터 뭔가 꼬이는 기분이다. 뭐 이런 경우가. 하긴 차야 뭐 어떠리. 절정인 영랑호 벚꽃을 보고 은밀한 사생활, 바다낚시를 떠나는데.

낚시에는 프로 수준이라는 원사가 합류했다. 운전병은 안되고 부사관은 휴일날 차출해도 되나? 궁금했는데, “전 이게 쉬는 겁니다. 어차피 매주 나가는데요” 그가 먼저 설명한다. 해변가를 달리다가 10분도 안돼 등대가 보이는 포구로 들어선다. 갯지렁이와 소주를 사들와서는 방파제 쪽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아니 술은 됐고 먼저 낚시할 곳으로 가지요. 고기부터 잡아야지”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 “아니 뭐 그러니까 민간인은 못들어가는 군사통제구역 그런데로 가는 거 아니었어? 꾼들 손 타지않아서 던질때마다 광어 우럭 도미 막 나오는 곳 없어? 너 뭐냐? 사단장씩이나 돼 가지고…”“큰 일날 소리 하네. 그런거 안되는지 오래야. 그리고 지키라는 통제구역이지 놀라는 통제구역이냐? 푸하하”

그래도 저녁엔 뭔가 색다른거 맛볼 수 있겠지 내심 기대했다. 장소도 회관 VIP룸이다. UDT가 물속에 들어가 잡아왔을 듯 싶은 멍게며 해삼을 호텔 식당 출신의 조리병이 만들어 내오겠지. 근데 웬걸. 별 게 없다. 우리가 잡은게 형편없어 그렇단다. 옛 얘기에 신나게 떠들고 쉼없이 잔을 권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뭔 일이 생길지 몰라서. 요즘엔 화상회의도 잦고”. 요즘 군인은 이렇구나.

다음날 굳이 지역주민 할인해 주는 곳에서 온천을 하고 해변가 풍광좋은 카페에 들렀다. 철책 사이에 만들어진 문으로 손님들이 모래사장까지 나갈 수 있었다. 근데 좀 떨어진 옆 카페엔 철책문이 없다. 특혜다 싶었다. 한 곳은 해안초소에서 북공작원의 침투여부를 감시할 수 있지만 다른 곳은 산으로 연결되어 불가능하단다. 카페 가까운 곳에 대규모 리조트가 들어선다고 했다. 당초엔 레이다 기지때문에 불가능한 곳이었단다. 레이더 기지 이전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다고 했다. 얼마전 군사분계선 내를 달리는 라이더들의 행사를 다룬 뉴스가 기억났다. “경찰 통제를 전제로 허가를 내줬지. 3000명이 온다는데.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데 대안을 만들면 가능하도록 하는게 요즘 군대야”

돌아오는 길에 작은 선물을 받았다. 정말 높은 분들께만 하는 선물인데 너희들이니까 준다며 생색을 엄청냈다. 집에 와서 풀어보는데 실소가 나왔다.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론이 쓰인 족자였다. 내무반도 아니고 이걸 어디 걸라는 거야. 참 요즘 군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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