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읽기] 반란의 도시가 된 대구
새누리당 대구 상황이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이 지역 출마 후보자들이 일렬로 무릅을 꿇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 그렇다. 오죽 마음이 급했으면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을까만 효과는 그리 있을 것같지 않아 보인다. ‘피눈물 나는 반성’을 외친다고 다시 돌아설 민심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존심을 더 자극하는 역효과나 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다. 더구나 정작 석고대죄해야 할 당사자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대구는 여당의 철옹성이다. 적어도 이전 선거까지만 해도 그랬다.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을 뽑던 12대(1985년) 총선 이후 야당, 또는 야권 성향의 인사가 당선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자민련 소속 당선자가 나온 적이 있긴 하나그 알맹이는 여권이었다.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이 보장되고, 공천장이 곧 당선증인 그런 곳이었다, 이처럼 물샐틈 없는 성벽이 균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지게 생겼으니 그보다 더한 것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다. 그만큼 대구시민들은 화가 잔뜩 났다는 얘기다.

대구의 반란은 한 마디로 찍어누르기 ‘패권공천’에 대한 응징이다. 권력이 오만해지면 반란은 앞마당에서 시작된다는 준엄한 사실을 통렬히 일깨워주고 있다. 물론 이같은 분위기가 투표장까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또 어떤 돌발 변수가 선거판을 요동치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대구 반란의 의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오만한 권력에 대한 경종은 이만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대구를 주목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한국 정치지형의 거대한 변화가 대구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지금으로 봐선 대구에서 야권 인사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비 한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봄이 멀지 않음은 분명하다. 대구 반란이 고질적이다 못해 망국적인 정치의 지역구도 타파를 알리는 강력한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 정치가 4류, 5류로 전락한 것은 지역주의 탓이 크다. 단단한 지역구도가 형성되면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정치인들은 유권자인 국민보다는 공천권자의 의중을 더 챙기는 처지가 돼 버렸다. 아무리 분탕질을 쳐도 특정 지역 공천만 받으면 그만이니 민생 살피기와 정책 경쟁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경쟁없는 사회는 퇴보하게 마련이다. 지역 구도가 정치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인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이 독식하던 호남이 국민의당 출현으로 경쟁체제에 들어간 것 역시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대구의 반란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여권이 끼어들 여지가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과의 호남 대 혈전은 뿌리가 같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아무리 작아도 변화의 흐름은 결코 역류하지 않는다. 대구에서 시작된 도도한 변화의 물결이 영남지역 전체를 적시고 호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높은 제방도 바늘 구멍 하나에 붕괴될 수 있다. 사상 최악의 막장공천이 뜻밖에도 정치 발전을 앞당기는 선물을 남긴 셈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