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싸움 정치·비리만연 사회 폭력적 상하관계에 저항 영웅의 정의감에 대리 만족
“너 말이야 새X야. 국가가 뭔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다. 군인인 나한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시하라고 국가가 준 임무는 없다.”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에서 주인공 유시진(송중기 분) 대위의 말이다. 우르크 대지진 속에서 혼자만 살려고, 혼자만 재물을 챙기려고 바둥대는 갑(甲)질의 공사 책임자를 향해 내뱉은 따끔한 충고다. 한 두사람 죽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책임자 입을 막은 분노의 멘트이기도 하다.
태후의 정의사회학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태후의 인기배경 요소 속의 ‘정의감’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과 맞물려 40~50대는 물론 10~30대에게도 영웅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대리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보다는 존영(尊影)이 먼저인 정치권, 부정과 비리, 운전기사 폭행과 같은 부당의 갑질사회. 최소한 이 땅의 수많은 ‘흙수저’들이 이런 현실에서 정의가 실종됐다고 절망하는 상황에서 태후의 정의감은 ‘각자의 대리만족’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이다. ▶관련기사 10면
이에 태후를 ‘정의사회학’의 한 부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드라마라는 것은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대중은 자신들에게 결여돼 있는 측면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여기서는 그것이 바로 정의인 것이다”며 “정의란 가치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특히나 결여돼 있기 때문에 태후 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런 모습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태후에서 상명하복의 폭력적인 상하 관계에서 이에 저항하는 송중기라는 캐릭터에서 사람들이 정의라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 같다”며 “이런 캐릭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런 사회심리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좋은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쁜(?)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와 판타지(환상), 그리고 드라마의 상술이 지배할 뿐, 드라마적 요소에선 훌륭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시선도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그널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는데, 태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대중적인 인기는 높은데,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안든다”며 “정의감과 로맨스 코드와 B급 민족주의 등등 수많은 것을 뒤섞어서 상업성에 치중한 드라마라고 본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선은 드라마에서 상업성을 솎아낸 ‘영웅 코드’에만 쏠려 있어 보인다.
외국 캐릭터인 어벤저스와 달리 우리 주변에 있을 법 한, 송중기라는 갓 제대한 군인, 오로지 생명만을 중시하는 사명감 있는 의사(송혜교)의 최강케미 이미지에서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사회정의를 꼭 달성하는 듯한 환상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상사 앞에서 굽신거릴 수 밖에 없는 나, 이익만 쫒는 나, 영달만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나…. 이런 자기 모습과 태후 주인공들의 소영웅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안방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영상ㆍ신상윤ㆍ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