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땐 인근 아파트로 대이동 떼지어 우는 소리에 잠 설치기도 여기저기 분비물 주민들 불편호소
#1. “또 새똥이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아파트 주민 A씨는 최근 자동차에 새똥이 떨어지는 일이 잦아 뜬금없는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검정색 승용차에 하얀 새똥이 묻으면 세차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떤 날은 세차를 한 다음날 또 다시 새똥이 묻어 있기도 했다.
#2.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가정주부 B씨는 겨울 동안 새들이 우는 소리에 아침잠을 설치는 일이 잦았다. B씨는 “아파트 단지 나무에 예전에 없었던 새 둥지들이 몇개 생겼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역시 “요즘들어 단지에 새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A씨와 B씨 동네의 공통점은 바로 인근에 재건축이 시작된 아파트 단지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둥지를 틀었던 새들이 터전을 잃고 인근 아파트로 단지로 이동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재건축 단지 인근에서는 “새가 늘었다”고 느끼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개포주공아파트 등 대단지의 재건축이 시작되면서 최근 새들이 늘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이전에도 새들이 많아 단지 내 새똥을 청소하는 데 애를 먹었는데 최근에는 새가 더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주민 이모(44ㆍ여)씨는 “요즘에 새벽 2시쯤에 까치들이 떼지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며 “단지에 실내 주차장이 없어서 주차할 때 새똥이 자주 떨어지는 곳은 피하게 된다. 남편도 그렇고 다들 새똥 스트레스를 받고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으로 둥지를 잃은 새들이 인근 다른 아파트로 이동해 가는 건 예측 가능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백운기 한국조류학회 상임부회장은 “새들은 찾아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파트 지역에 산다”며 “관련 연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재건축 등으로 기존 단지가 철거돼 터전을 잃은 새들이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경희대 부설 한국조류연구소 소속인 이진원 연구교수는 “비둘기나 까치, 직박구리 등 서울 아파트 단지에서 서식하는 종들은 밤에 나무 위에서 모여 자기 때문에 그 밑에 주차된 차들이 분비물을 맞는 경우가 있다”며 “종마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주로 아파트에 사는 새들은 세력권이 적은 종들이라 이동이 자유롭고 재건축으로 철거되면 인근 아파트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