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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단기성과 집착하니 R&D 투자 효과 없을 수밖에
정부 출연 연구개발(R&D) 사업에서 참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 돈의 일부를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주목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2004년 해양수산부가 발주한 ‘해양천연물 신약 연구개발’을 맡아 2013년까지 326억원의 출연금을 받았다. 이 돈으로 8개 이상의 독자적인 신물질을 개발해 제약회사 등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하지만 결과는 단 한건의 성공도 거두지 못한 완전 실패였다. 그러자 해수부가 출연금 일부 환수를 요구했고,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부 출연금을 사용하고도 연구가 실패로 끝난 경우 책임을 묻는 것이 공익상 필요하다는 게 법원 판단의 요지다.

과학기술기본법 등에 근거한 법원의 판단은 물론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R&D 투자는 8건이 아니라 100건을 진행해도 모조리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비록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이런 R&D 투자의 특성이 판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듯해 매우 아쉽다.

무엇보다 단기 성과와 생산성만을 요구하는 정부의 근시안적 R&D 투자관(投資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피같은 국민의 세금인 만큼 연구비의 쓰임새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잘 감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성과가 없다고 연구 단체와 책임자에게 그 돈을 물어내라는 식의 요구는 누가 봐도 지나치다. 이런 환경에서 마음 놓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연구원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올해 관련 예산만도 20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과학기술 논문(SCI) 한 편당 피인용 횟수는 하위권을 맴도는 등 양적인 성장에 걸맞는 성과는 지극히 미미하다. 한국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명도 내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것도 기초 원천기술에 제대로 된 장기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실패도 자산이다. 실패는 더 새롭과 창의적인 성과를 도출해 가는 하나의 반면교사다. 건전한 실패가 허용되는 연구 풍토가 조성이 투자액을 늘리는 것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다만 연구 개발 참여자들도 연구 과정과 비용 지출 내역 등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게 불투명하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면 실패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판결이 R&D 환경 전반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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