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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형근의 꿀잼툰] ‘잊혀질 권리’가 빚어낸 괴물...당신이라면?
[헤럴드경제=송형근 기자] 2010년, 초국적 인터넷 기업 구글을 상대로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나의 정보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재가공 되고 있다”.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자 곤잘라스가 촉발시킨 이 논쟁은,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국내에선 ‘잊혀질 권리’에 대한 입법 활동도 진행되고 있지만, 갈 길이 멀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신상이 공개돼버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 오죽하면 정보를 찾아 지워주는 대행업체가 성행할까요. 모두들 한번쯤, 자신의 과거 ‘흑역사’가 담긴 디지털 정보들을 지우고 싶은 충동이 일겁니다. ‘정말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독특한 소재의 웹툰 ‘컨트롤 제트’는 누구나 해볼 법한 단순한 상상에서 시작됩니다.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주인공 서기혁은 비극적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명석한 두뇌로 명문대 수석 입학했지만, 주변의 시선은 언제나 싸늘합니다. 부녀자 1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의 아들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미 신상이 온라인상에 공개돼 주변 지인이 모두 알고 있다는 겁니다. 초면의 대학 동기도, SNS에 유통된 정보를 통해 순식간에 ‘살인마의 아들’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면죄부는 없습니다.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배기호 반장이 유출한 신상 정보가 퍼진 결과죠.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배 반장을 통해 살인마 아버지의 유품을 손에 얻습니다. 구형 노트북, 인터넷도 안 될 것 같은 외관이지만 기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사용자 입력을 하면, ‘컨트롤 제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의 기억, 특정 시점을 정해 지워버릴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코드로 변환된 정보도 말이죠. 단, 사진이나 신문 등 물질로 남은 경우엔 직접 없애야 합니다.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주인공은 자신을 억누르던 옛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립니다. 명문대 수재, 밝고 쾌활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핑크빛 로맨스도 빠질 순 없죠. 아름다운 여대생 배희지를 만나 둘은 행복한 날을 꿈꾸지만, 문제가 벌어집니다. 희지가 우연찮게 노트북에 사용자 등록을 한 것이죠. 희지가 타인과 신체접촉을 할 때마다 기혁에 의해 지워진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사용자 등록이 돼 버린 희지의 기억은 주인공조차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한배에 타거나 혹은 바다로 밀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사용자 등록을 제거하고 기억을 지워주겠다며 함께 하자는 주인공. 희지는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누군가에겐 소중할지도 모를 기억을 자신을 위해 마음대로 지워버릴 순 없다”라면서요. 종착역을 향해 달리던 두 사람은 결국, 희지가 주인공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끝납니다. 단순히 잊혀지길 원했던 주인공. 그러나 자아를 잃어버린 괴물이 돼 버립니다. 한명의 기억을 지울 때 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그 대가는 점점 쌓입니다. 주인공은 폭력과 살인, 세뇌를 통해 신처럼 군림합니다.
[사진=웹툰 '컨트롤 제트']

단 한 명, 희지의 친아버지이자, 기혁의 아버지를 검거했던 배 반장만이 집안에 남은 사진과 종이 신문을 통해 거짓된 세상에 맞섭니다. 추억이 담긴 낡은 사진과 일기만이 딸이 존재했었다고 말합니다. 수년이 지나, 주인공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1인 시위는 계속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죠.

기억 조작이라는 소재는 많은 영화, 드라마에서도 다뤄졌습니다. 그러나 웹툰 ‘컨트롤 제트’는 보다 현실적인 2016년 한국의 인터넷 세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신상을 털고, 한 순간에 사람을 악인으로 낙인 찍는 SNS의 오용. 주인공 기혁이 당한 일은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실제 오늘날 SNS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실을 옥죄는 과거의 잔상들,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안 좋은 기억이 인터넷에 둥둥 떠다니는 것도 마찬가지군요. ‘잊혀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단, 주인공 기혁처럼 진실을 조작하는 걸 의미하진 않겠죠.

‘컨트롤 제트’는 지난달 30일 기준 12회까지 연재됐습니다. 포브스가 주목하는 IT 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34세 청년사업가 기혁, 그에 맞서는 배 반장의 외로운 투쟁이 어떤 국면을 맞을지 기대되는군요.

s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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