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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이우환 화백의 ‘말하지 않을 권리’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그것은 일체 답하지 않겠습니다. 변호사와 상의하세요.”

1년 넘게 침묵했던 이우환 화백이 ‘위작설’ 관련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다.

이 화백이 28일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샤또 무똥 로칠드 2013’ 빈티지 라벨 및 원화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줄리앙 드 보마르셰 드 로칠드 남작(왼쪽)과 이우환 화백.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그간 이 화백을 국내 화랑가에서 만나긴 힘들었다. 2014년 국제갤러리 단색화 그룹전 이후 그는 공식적으로 전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가며 작업하고 있지만, 위작 논란이 불거진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 등 접촉을 일체 피해 왔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공식 무대에 선 게 지난해 12월 연세대와 (재)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한 대중 강연이었다.

최근 이 화백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1월 14일 홍보대행사를 통해 ‘샤또 무똥 로칠드’ 라벨 및 원화 공개 행사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언론에 알려 왔고, 25일 법률 대리인 최순용 씨를 통해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 일일이 직접 답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오늘 이후 위작 의혹 관련해서는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로 창구를 일원화한다”고 알려 왔다. 이로써 이 화백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차단된 셈이다. 

샤토 무똥 로칠드 와인 라벨 원화 공개 행사에 참석한 이우환 화백(오른쪽).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국내 일간지들은 이 화백에 대한 질의 내용을 취합해 전달했으나 답변은 미뤄졌다. 최 변호사는 2월 2일께 공식적인 답변을 줄 수 있다고 공지했다.

샤토 무똥 로칠드의 라벨 작가로 선정됐다는 건 세계적인 작가로서 이 화백의 위상을 보여준다. 샤토 무똥 로칠드는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마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존 휴스턴, 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드 등 세계적인 미술가들과 라벨 작업을 해 왔다.

28일 행사에서 무똥 로칠드 가문의 줄리앙 드 보마르셰 드 로칠드 남작과 함께 자리한 이 화백은 라벨 작업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10분 넘게 풀어 냈다. 그러나 수개월째 국내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는 ‘위작설’ 관련해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일체 답하지 않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대중의 관심은 세계적인 와인하우스와의 협업보다 위작설에 쏠려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화백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수사가 길어짐에 따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미지 훼손, 저작권 침해,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피해 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이 화백이 위작설에 공개적으로 해명할 필요는 전혀 없다. 위작 제작도, 유통도 이 화백의 의지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화랑과 개인 간 거래에서 드러난 위작 때문에 이 화백이 금전적인 피해를 봤다고 보기도 힘들다. 다시 말하면 현재 경찰 수사 중인 ‘위작 사건’에서 이 화백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가장 큰 피해자는 위작을 구매한 컬렉터다.

이 화백이 법률 대리인을 대동하고 직접적인 소통 창구를 차단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지난 2014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본 작품 중 위작은 한 점도 없었다‘는 말이 위작 유통을 부추겼다는 중론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방어를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말 고 천경자 화백 사후 ‘미인도 위작설’이 다시 불거지면서 천 화백의 유족들이 법률 대리인을 대동하고 나와 ‘위작을 진작이라고 근거없이 떠들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 이후 관련 논의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던 사례를 비춰보면, 이 화백의 현 태도 역시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 화백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이날 무똥 로칠드 측은 “행사의 취지를 참고해달라”며 이 화백에게 쏠린 민감한 질문들을 사전 차단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안에 대한 이 화백의 입장은 무엇인지 질문이 제기됐으나, 들을 수 있었던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앞으로도 이 화백으로부터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계의 속성과도 같다. 미술이라는 ‘고귀한’ 소유물을 사고 파는데 무슨 이성과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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