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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人]17년 프로 생활 마감한 '청순 골퍼'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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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생활 17년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김영. (사진=원동민 기자)


인생을 연극무대에 빗댄다면 몇 개의 막으로 꾸며질까? 어떤 이는 가족 숫자로 설명한다. 자라고 배워서 자립하는 단계,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단계, 자식을 출가시키는 단계, 다시 홀로 되는 단계. 그렇게 헤아리자니 인생이란 참 덧없고 고되다.

사회학자인 윌리엄 새들러는 생애주기별 분석을 통한 명 저서 <서드 에이지(Third Age)>라는 책에서 태어나고 교육받는 단계, 그를 통해 사회적 정착을 하는 단계, 40세 이후 자아성장을 하는 단계인 서드 에이지, 노화와 삶을 마감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

하루하루 생업 전선에 시달리느라 아등바등 살다 보면 ‘어느새 장년’이거나 ‘어쩌다 중년’이 남 얘기가 아니다. 시간은 항상 신념을 배반한다. 세월은 경륜을 줄지언정 모험심을 빼앗아간다.

오랜 동안 프로로 살던 골프 선수의 은퇴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한참 주목받던 프로가 어느새 생활인 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면? 세월을 기다려 시니어투어로 넘어가지 않고 뭔가 다른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면? 또한 결혼을 통한 자연스러운 은퇴가 아니라면?

이제 골프 선수, 그것도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A)에서 메이저 2승 포함, 5승을 거둔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무대에서도 우승을 거둔 김영(36)이 17년 프로 골퍼 인생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골프 선수에게서 보기 힘든 벙거지 모자에, 흰 살결이 두드러져서 남성 팬이 유독 많았던 김영은 골프를 배우고, 프로에 데뷔하기까지 19년, 1998년부터 시작한 프로 생활로 17년을 살았다. 어느덧 투어 프로라는 외피를 벗은 일반인 김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은 서툴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프로가 되었고, 골프 속에서 36년을 살다보니 이제 맞이할 인생길엔 새내기다.

나고 자란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려면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택시를 타고 뚜벅이로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김영은 “춘천에서는 어머니 모시고 차를 몰지만 서울은 길이 서툴러서…”라고 얼버무리더니 이내 “서울에 집 마련하고 직장 잡으면 차를 가지고 다녀야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참 생경하게 들린다.

미국에서 2001년부터 10년간, 일본에서 2010년부터 6년간 선수생활을 했는데, 그렇다면 이제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의 필드는 어떻게 펼쳐질까? 아직은 서툴러 보이고 생소하다. 교습을 할지 방송을 할지, 정한 바는 없다. 차차 정할 생각이다. 짝을 만나 결혼도 하고 싶다.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지도 않다. 어쩌면 서드 에이지가 일찍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연애는 해봤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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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프로 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장을 낸 김영. (사진=원동민 기자)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은퇴하는 것 같은데?
원래는 2014년에도 은퇴하려 했다. 8월 쯤에 그만하고 쉬려 했다.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니 우울증이 오는 느낌이었다. 집에 있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고 어색했다. 집에서는 그만두라고 했다. 오빠가 1년 정도는 완충기를 가지고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서 작년에 출전시합을 줄이고 은퇴한 친구와도 연락하며 지냈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할 일도 없다고 하더라. 지난 해는 5개를 줄여 25개 일본 대회에 출전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마음 정했다.

-대회 중에 딴 생각하면 샷이 안 되고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대회 중에 이런저런 생각이 수없이 오갔다. 보기를 하면 은퇴하자, 버디를 잡으면 아니야! 다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로에서 생각하면서 2년 정도 보냈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나서 샷이 가장 잘 되었다. 대신 간절함이 없으니 숏게임이 안되더라. 정신력에서 나오는 버디같은 것이 없었다. 쇼트 퍼팅도 종종 놓쳤다. 스코어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우승이 간절할 때는 홀 1m에 붙여도 못마땅했는데 이젠 근처에만 가도 편했다. 그게 차이였다. 마음은 편하고 승부에 절박하지는 않고.

-은퇴에 대한 후배들이나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막을 줄 알았다. 그런데 후배들이 ‘하실 만큼 하셨어요’, ‘그만 두셔도 돼요’라고 했다. 그래서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로에 선 나이다. 작년까지 확실히 느낀 것은 골프하면서 패기와 열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경기에 나가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 열심히 해봤자 최고의 선수는 안 될 것 같아서, 지금 나이에는 한 해라도 빨리 내 자신을 변화시켜서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기로 결정했다.

-레슨이든, 방송이든, 공부든 진로를 뭘 정하긴 했나?
아직 못 정했다. 공부는 아닌 것 같다. 박사, 석사 학위자도 이젠 주변에 너무나 많다. 레슨이나 혹은 골프 방송을 한다면 잘 할 수 있을까?

-10여 년 간 미국 생활을 한 뒤에 2010년에 일본으로 무대를 옮긴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원래 일본을 동경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가 온 뒤로 일본에서 오히려 대회가 많았다. 2009년에 일본 계약사(마루망 마제스티)가 붙었다. 시즌은 일본이 먼저였는데 시합을 하니 너무 편안했다. 일본 대회가 3일이란 것, 이동거리도 짧고, 음식도 잘 맞고, 시합이 체계적이라 좋았다.

-외국 생활을 참 오래했는데 생활은 어땠나?
미국서는 계절마다 집을 렌트했다. 올랜도, LA 등등 옮겨 다녔다. 그리고 겨울이면 한국에 와서 쉬웠다. 일본은 가까운 거리여서 집에서 다녔다. 시합장에서 공항을 오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처음 2년간은 일본어로 인터뷰를 하거나 아니면 통역을 써야 했다. 한두해 통역비만 2,000만~3,000만 원이 들었다. 2년이 되니까 통역 없이 가능했다.

-19살에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프로 데뷔한 다음해 거둔 첫 승이었다. 한양컨트리클럽 신코스에서 열린 롯데스포츠투데이 한국여자오픈은 시즌 마지막인 11월에 열렸다. 박세리 선배가 출전했고, 메인 스폰서인 롯데는 유명 선수를 많이 초청했다. 안니카 소렌스탐, 낸시 로페즈 등이 출동했는데 거기서 덜컥 우승했다. 계속 2등만 하다가 거둔 우승이어서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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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거지 모자가 특징인 김영은 7년간 신세계의 유일한 소속 선수였다.


- 그러고 나서 곧바로 신세계의 유일한 소속 선수가 됐는데?
프로 데뷔하면서 필라에서 1년 계약한 뒤에 바로 신세계와 계약이 덜컥 됐다. 당시에는 말뿐인 계약이 많았다. 처음엔 신세계가 대기업인지 몰랐다. 백화점에서 나를 왜 계약하려고 하나 싶었다. ‘도장을 찍어야 계약이지’ 싶었는데 얼마 안 되어 회장님 댁으로 찾아가 뵈었다.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 전날 내 경기를 봤다고 하셨다. ‘나는 너를 광고하려고 뽑은 게 아니다. 우승 못해도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 골프 선수로 살면서 가장 고마운 분은 이명희 회장님이다.

이후로 자유CC에서 살다시피 했다. 밥 먹고 골프 연습하는 게 모두 공짜였다. 클럽하우스 위에 별채도 썼는데, 화장실이 방만큼 컸다. 당시 미국 무대로 나가는 건 꿈도 못 꿨는데 나는 가능했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시합 없을 때 회장님이 부르시면 바로 가서 골프를 쳐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떤 기업은 술자리도 부른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2006년까지 7년 동안 계약하면서 회장님 개인적인 골프 라운드를 따라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계훈련 때 미국에서 연습하고 있으면 근처에 계시던 회장님께서 식사 때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신 적은 종종 있다. 지인들이 볼을 함께 치자고 해도 오히려 ‘연습방해 되니까 안 된다’고 막으셨다. 생각해 보면 딸같이 대해주신 것 같다.

-직접 만나 본 이명희 회장은 어땠나?
회장님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밀어주신 것이다. 처음 3년 계약하고 3년, 1년 더 연장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더해주고 싶은데 나로서는 여기까지다. 1년 더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다. 실무자들이 반대하니까 그러셨던 거다. 계약이 만료되고 난 이듬해 코닝클래식에서 우승하고 나서 신문기사를 봤다. 회장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한 선수가 LPGA에서 우승하면 광고 효과가 얼마라고 소개되던 때였다. 그 전에 우승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편에 계속) [헤럴드스포츠=남화영 기자]

김영 프로파일
출생: 80년2월2일 춘천생
프로 데뷔: 1998년
국내 기록: KLPGA 5승(1999년 롯데컵스포츠투데이 한국여자오픈, 2002년 파라다이스여자오픈, SBS프로골프최강전, 2003년 신세계배 KLPGA선수권, SBS프로골프최강전).
해외 기록: LPGA퓨처스투어 1승(2001년 바로나크릭우먼스골프클래식), LPGA 1승(2007년 코닝클래식), JLPGA 1승(2013년 니치이코레이디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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