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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73세에도 89세에도 여전히 거리에 나섭니다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2000년 4월,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던 기자는 현장학습 차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앞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 도착한 기자는 그곳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게 됐습니다. 제목은 ‘낮은 목소리 3-숨결’.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 따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 그저 학교 밖으로 나간단 설렘만 가득했던터라 당시 기자의 머릿속에는 그저 ‘영화 끝나고 친구들이랑 뭐하고 놀지’라는 생각밖에는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 기자는 이내 영화에 푹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삶에 대해 그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화 주인공으로 나온 분은 바로 73세의 젊은(?) 이용수 할머니였습니다. 이 할머니가 직접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 및 사과, 법적 배상을 외치는 모습을 보며 기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자는 어리고 순수한 마음에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이처럼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상황이라면 머지않아 할머니들도 피해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받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실 것이라고.

16년의 시간이 지난 2016년 1월 13일. 이젠 중학생이 아닌 사회부 기자로서 나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앞에서 영화속에서만 봤던 이용수 할머니를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하의 모진 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서 열린 1213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 할머니는 89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89세, 운동하기 딱 좋은 나입니다”라며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하지만, 이렇게 뵌 할머니의 모습이 기자는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사회부 기자로서 수요시위에 참석해 발언하신 할머니를 만나뵀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할머니들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시위에서 이 할머니는 16년전과 같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일본정부의 직접 사과와 법적 배상‘을 다시 한 번 소리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90세가 가까운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리에 나선 것은 여전히 일본 정부가 과거 자신들의 전쟁 범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는 과거에 비해 더 열심히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12월 28일 한ㆍ일 양국 외교장관 간에 합의한 위안부 문제 해결안이 오랜 기다림과 투쟁을 해왔던 할머니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엔 턱없이 미흡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죠.

할머니들은 우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지 않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대신 사과한 점,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를 정부의 강제 징집이라 명시하지 않은 것, 법적 배상금 대신 할머니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재단 설립을 위한 100억엔의 보상금을 지급 등의 합의 내용은 그동안 본인들이 요구해온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먼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일본과 한국 정부간에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번 합의가 ’불가역적, 최종적‘인 만큼 향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문항을 넣은 것은 할머니들로 하여금 더 분노케 만들었습니다.

사실 정부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100% 만족할 수 없는 협상 결과를 도출했지만, 일본 정부가 최초로 정부 차원의 책임 인정과 사과 발언을 합의안에 담았다는 점, 한 분 이라도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생존해 계실 때 혜택을 받으실 수 있도록 협상을 서둘렀다는 부분은 무시하고 지나갈 수 만은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협상 전 좀 더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또 시간에 쫓기지 말고 보다 일본 정부의 관련성과 책임을 합의안에 넣었어야 한다는 각계 각층의 지적만 잘 지켜졌더라면 또다시 할머니들이 길 위에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런데요. 이날 취재 현장에서 또 한 번 기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한 여고생의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여고에 다닌다는 이 학생은 기자를 보곤 “제 꿈도 기자에요. 제가 선배님처럼 기자가 됐을때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는 취재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때까진 꼭 이 시위도 끝날 수 있겠죠?”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진심으로 이 여고생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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