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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11월의 가을밤, 한국 단색화로 빛났다

-현지에서 본 제 17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

-낙찰총액 1억7924만홍콩달러(약 267억3500만원), 낙찰률 83.76% 기록

-박서보ㆍ정상화 뜨고 이우환 주춤…권영우 등 단색화 2군 작가들 가능성 보여

-일본인이 갖고 있던 조선 18세기 초 달항아리 국내 환수도 성공



[헤럴드경제(홍콩)=김아미 기자] “(경매장 응찰자에게) 확실해요? 저는 상관 없어요. 어느 쪽이든 말이죠(Sure? I’m sure. It’s OK either way).”

29일 저녁 제 17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가 열린 그랜드하얏트호텔. 한국 단색화 작가 박서보(84)의 1980년대 초기작 ‘묘법(Ecriture)’이 낙찰가 10억원 돌파를 눈 앞에 둔 상황이다.

현장 응찰과 전화 응찰이 맞붙었다. 전화 응찰자가 600만홍콩달러(약 9억원)를 호가한 상황. 7년 경력의 아시안아메리칸 스타 경매사 지안 추(Zehan Chu)가 미소 띤 얼굴로 현장 응찰자를 유혹한다. 여기서 끝낼 것인가.

다시 현장 응찰자가 640만홍콩달러를 호가했다. 좌중에서 “와” 하는 낮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경매장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전화 대 현장의 열띤 경합 끝에 박 화백의 작품은 650만홍콩달러(약 9억7000만원)를 부른 전화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다. 수수료를 포함한 판매금액은 767만홍콩달러(약 11억4400만원). 지난 밤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이어 박 화백의 작품이 이틀 연속 10억원을 돌파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박서보 화백은 ‘10억원 클럽’에 세번째로 오른 단색화 작가가 됐다. 

사진=29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 현장. [사진(홍콩)=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단색화로 빛난 홍콩의 밤…박서보ㆍ정상화 날았다=11월의 마지막 주말. 홍콩의 밤을 빛낸 건 별이 아니라 단색화였다. K옥션과 크리스티, 서울옥션까지 이틀에 걸쳐 홍콩섬 컨벤션에비뉴 일대에서 펼쳐진 미술품 경매에서 한국의 단색화는 당당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박서보, 정상화 화백이 훨훨 날았다.

28일 가장 먼저 열린 K옥션 경매에서 정상화의 작품 2점은 낮은 추정가의 2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됐고, 같은 날 크리스티에서는 박서보의 1975년 작품 1점이 780만홍콩달러(약 11억 6300만달러)에 낙찰되며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크리스티는 김환기,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등 단색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높은 추정가, 혹은 높은 추정가의 2배 이상 가격에 ‘솔드아웃’ 시키기도 했다.

29일 서울옥션 경매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한 것도 박서보, 정상화였다. 1970~80년대 박서보와 정상화의 작품 6점(각 3점)이 높은 추정가를 뛰어넘는 금액에 잇달아 낙찰됐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서울옥션 경매장을 찾은 홍콩의 아트 딜러 존 웡(John Wongㆍ36) 씨는 한국 단색화에 대해 “중국, 일본과는 다른 특별함(unique)을 갖고 있다”며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서구 컬렉터들의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50만홍콩달러(약 9억7000만원)에 낙찰된 박서보의 ‘묘법 No. 2-80-81’. [사진제공=서울옥션]

*사진= 일본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던 달항아리를 한국인 개인 컬렉터가 낙찰받았다. [사진제공=서울옥션]

▶권영우 등 단색화 2군 작가들의 약진…“위작설 악영향” 이우환 주춤=단색화 2군 작가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최근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권영우 화백의 작품 2점이 서울옥션 경매에서 높은 추정가를 뛰어넘은 50만홍콩달러(약 7500만원), 75만홍콩달러(1억120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한지에 잉크, 과슈로 그린 100호 이하의 그림들이다. 김기린의 100호짜리 그림 1점도 38만홍콩달러에 낙찰돼 높은 추정가를 웃돌았다.

경매장에 참석했던 한 국내 미술계 인사는 “단색화가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해외 경매에서 박서보, 정상화 화백의 작품이 엎치락뒤치락 흥행 톱을 달리고 있는데다, 이번 경매에서 권영우, 김기린 등 2군 작가들까지 선전해 한국 단색화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위작설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이우환은 1979년작 수채화가 유찰되면서 시작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바람’ 시리즈 3점을 포함, 이우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 온 1970년대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연작 3점까지 낮은 추정가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120~140만홍콩달러ㆍ약 1억7900만~2억900만원)에서 큰 경합없이 낙찰되는 데 그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뉴욕 소더비 경매 등에서 20억원을 훌쩍 뛰어 넘었던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경찰의 위작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진=홍콩 크리스티의 김환기 작품 경매 현장. 크리스티는 경매 번호 1부터 6까지 한국 단색화를 포진시켜 눈길을 끌었다. [사진(홍콩)=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780만홍콩달러에 낙찰된 박서보의 1975년 작 ‘묘법 No. 65-75’. [사진=크리스티]

▶달항아리 국내 컬렉터가 낙찰…해외 반출 미술품 환수 계기로=일본인 컬렉터가 5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 18세기 초 ‘달항아리’가 국내에 돌아오게 된 것도 이번 서울옥션 홍콩 경매의 쾌거다. 높이 42㎝ 짜리 백자대호가 1200만홍콩달러(약 17억8992만원)에 한국인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된 것.

1800만~2400만홍콩달러에 출품됐던 백자대호는 1100만홍콩달러에서부터 응찰을 시작해 다섯차례 가량 경합을 벌이다 서면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다.

백자대호는 통상 높이 40㎝ 이상의 백자 도자기를 일컫는 말로 국내외를 통틀어 20점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아 매우 진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출품됐던 백자대호는 그간 서울옥션이 출품했던 백자 도자기 중 가장 큰 사이즈다. 18세기 왕실 도자기를 굽던 경기도 광주 ‘금사리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유백색에 비정형의 둥근 형태가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홍콩에서 고미술 경매는 이번이 두번째다. 이번 경매를 통해 해외에 나가 있던 우리 고미술 작품들의 국내 환수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서울옥션은 이번 홍콩 경매에서 낙찰총액 1억7924만홍콩달러(약 267억3500만원), 낙찰률 83.76%(총 117점 중 98점 낙찰)를 기록했다. 구매 수수료를 포함한 총 판매금액은 2억1150만3200홍콩달러(약 315억4800만원)다. 국내 작가 중 최고가는 김환기의 1970년 점화 작품으로, 1350만홍콩달러(약 20억1400만원)를 부른 전화 응찰자에 낙찰됐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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