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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평을 호평으로 돌아서게 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올초 초연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원작 영화에 대한 향수, 화려한 캐스팅 등으로 기대를 모았다. 막상 뚜껑을 열자 뚝뚝 끊어지는 전개 등으로 관객과 언론의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중장년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불과 10개월만에 재공연에 나섰지만 현재 ‘레미제라블’ 등 쟁쟁한 뮤지컬들 사이에서도 예매 순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스토리와 음악부터 영상, 커튼콜까지 손을 본 결과 초연 때 혹평했던 사람들도 호평으로 돌아서고 있다.


음악, 스토리부터 커튼콜까지 보완=지난 24일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박영석 쇼미디어그룹 대표는 “뮤덕(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외면받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티켓 오픈 첫날 인터파크 예매 순위 1위였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비비안 리ㆍ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프랑스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2003년 뮤지컬로 옮겼다.

프랑스 뮤지컬은 한장면, 한장면의 미장센을 중시한다. 스칼렛이 솔로곡을 부를 때 하녀 프리시가 현대무용 같은 춤을 추는 식이다. 반면 한국 관객들은 이를 낯설어했다. 특히 각 장면들의 연결고리가 약해 “영화 명장면 짜깁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박 대표는 초연 당시에도 프리시의 춤을 없애는 등 관객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스칼렛의 딸 보니가 죽는 장면에 어린아이 인형을 쓰다가 “인형극이냐”라는 소리에 집에 가서 딸에게 말했다. “너 시체 역할 좀 하자” 이후 그의 딸이 보니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초연 때 40일간 공연했는데 이틀 빼고 매일 공연을 봤어요.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블로그에 올라온 리뷰도 찾아봤죠. 재공연을 앞두고 한진섭 연출에게 그 때 메모한 노트를 다 줬어요. 무엇보다 드라마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죠”

재공연에서는 대사가 몇 마디 추가됐을 뿐이지만 이음새가 한결 매끄러워졌다. 스칼렛이 철부지 소녀에서 강인한 여인으로 변해가는 과정 등이 초연에 비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음악도 초연 때 녹음반주(MR)와 달리 라이브로 연주해 훨씬 생동감이 살아났다. 초연 때는 계약상 프랑스 제작사에서 제공한 MR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 제라르는 아티스트니까 자신의 작품에 손대는 것을 싫어했어요. 프랑스 공연에는 없었던 영화 주제곡 ‘타라의 테마’를 오프닝과 엔딩에 넣었더니 무조건 빼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타라의 테마’에서 향수를 느끼는 한국 관객들을 고려해 달라고 간신히 설득을 했죠”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느라 숨찼던 초연과 달리 배우들의 유머로 작품은 한층 여유로워졌다. 주관객층인 40~50대를 겨냥해 바다, 남경주, 김소현, 신성우 등 관록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결과다.

20~30대 여성 관객 일색인 대부분의 뮤지컬과 달리 ‘바람사’는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부터 젊은 커플, 노부부까지 관객 연령대가 다양하다.

“고교 동창회같은 단체관람 문의도 많이 들어오고,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삼삼오오로 오고 계세요. 저 분들이 우리 공연을 살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날은 한 노부부가 극장 직원의 부축을 받아서 객석에 앉았어요. 흐뭇한 표정으로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그간 중장년층, 노년층이 볼만한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이런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사 대표부터 발 벗고 나서니 배우들도 헌신적이다. 바다는 하루 2회 공연을 소화하고 밤 11시에 ‘바람사’ 홍보 인터뷰를 하러 가기도 했다. 긴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신성우는 23년만에 숏커트를 했다. 상반신을 노출하는 노예장역의 박송권은 3개월간 닭가슴살만 먹으며 근육을 만들었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이 넓게 퍼지잖아요. 관객 반응을 그냥 넘기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죠.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고 있어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좋아질 거예요. 킬링넘버가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조만간 한국 배우들의 OST를 내서 관객들에게 노래가 익숙해지도록 할 생각이예요”

사진=박현구 기자/phkoo@heraldcorp.com

운칠기삼을 기칠운삼으로=‘바람사’를 무대에 올리기 전에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프랑스 제작사와 별도로 원작 소설 작가인 마가렛 미첼의 후손과 따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야했다. ‘타라의 테마’를 쓰기 위해 영화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와도 접촉했다.

복잡한 계약 진행으로 극장 대관, 캐스팅 등이 지연됐다. 가장 처음 접촉했던 공연장과의 논의는 결국 무산됐다. ‘바람사’와 동시에 진행 중이던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도 건설사와 건물주의 다툼으로 대관에 문제가 생겼다. 박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대학로 길거리에서 5000원을 주고 점을 봤다. “사업이 힘드네요”라는 그의 말에 점쟁이는 “잘 될거다”라고 예언(?)을 했다.

“사주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끝까지 해보자’ 했어요. 그랬더니 대관, 캐스팅 문제가 하나둘씩 풀렸나갔어요. 이번에는 운칠기삼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기칠운삼이 돼야죠”

‘요셉 어메이징’은 당초 공연 예정이었던 대학로뮤지컬센터 대신 유니버설아트센터로 공연장을 옮겼다. 아이돌 가수 양요섭과 2013년 12월말까지 출연 계약을 맺었는데 유니버설아트센터는 12월 초까지밖에 쓸 수 없었다. 결국 적자를 냈지만 그는 꼭 부정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라르나 마가렛 미첼 후손들이 신생 제작사에 뭘 믿고 작품을 주겠어요. 제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요셉 어메이징’ 한국 공연을 했던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쇼미디어그룹]

▶‘바람사’ 중국 진출 논의도=박 대표는 뮤지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 콘서트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캐피탈에 입사해 여신 업무를 담당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입사한지 딱 2년째 되는 날 사표를 냈다. 엠넷에서 음악 프로그램 PD를 하다가 코엑스 공연사업부문으로 옮겼다. 2006년 독립한 그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콘서트 기획할 때 돈을 벌기는 쉬웠지만 보람은 못 느꼈어요. 3~4개월 준비해서 하루 공연하고 나면 끝이었죠. 하지만 뮤지컬은 스태프나 배우들과 두세달 동안 같이 호흡하는 것이 즐거웠어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올리고 나서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바람사’는 중국 진출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 ‘바람사’가 성공했다는 소식에 프랑스 현지 제작사들이 먼저 미팅을 요청해오기도 한다.

박 대표는 앞으로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생을 조명한 뮤지컬 ‘포’와 대작 뮤지컬 ‘나폴레옹’을 선보일 계획이다. ‘바람사’처럼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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