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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로에 ‘20대 여배우’가 없다고? ‘극한 직업’으로 찾아온 그녀들
‘충무로에 20대 여배우가 없다’는 말, 입에 올리기도 지겹다. 그런데 지겨운들 어쩌나, 현실이 그런 것을. 하반기 극장가만 돌아봐도 그렇다. 서로에게 칼을 겨눈 아버지와 아들이 관객을 울리더니(‘사도’), 검은 사제복의 신부와 부제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검은 사제들’) 급기야 각계각층 남자들이 ‘떼’로 관객 몰이에 나섰다.(‘내부자들’) 물론 이 모든 작품에 여배우가 있었고, 비중이 상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포스터에 얼굴이 실리는 주역은 아니었다.

20대 여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영화는 주로 로맨스 장르에 쏠렸다. 로맨스 영화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소비층이 한정돼 있다. 따라서 관객층이 보다 폭넓은 액션이나 스릴러, 휴먼 드라마 등의 제작에 쏠림 현상이 빚어졌다. 반면 로맨스 영화는 기근이다 보니 스크린에서 젊은 여배우들의 행보도 뜸해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귀한’ 20대 여배우들이 같은 날 극장가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 주인공은 박보영(25)과 수지(21).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팬층을 확보한 데다, 전작들의 흥행으로 티켓 파워도 기대되는 스타 배우들이다. 게다가 지지고 볶는 연애담이 아닌,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야기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더 반갑다. 



▶열정은 개나 줘버리라는 패기의 신입, 박보영=앳된 외모의 박보영은 이제야 20대 중반인 제 나이를 찾았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 실제 또래들처럼 사회 초년생으로 분한 것. 연예부 수습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도라희’는 괴팍한 부장 밑에서 한 시도 편할 날이 없다. 박보영은 학창시절 친구들과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평범한 직장인의 고충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았다.

“신인 시절을 생각하며 공감대를 쌓으려 했어요. 제가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평소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가 도움이 됐죠. 이미 취업한 친구도 있고, 여전히 준비 중인 친구들도 있어요. 아무래도 제 투정은 친구들에겐 ‘배부른 소리’일 수 있으니까, 주로 들어주는 입장이 된 것 같아요.”
 
마냥 풋풋한 소녀같지만, 어느덧 데뷔 10년 차다. 현장에 후배들도 제법 생겼다. 그렇다보니 박보영은 상사 하재관 부장(정재영 분)과 후배 도라희 사이에서 치이는 한선우(배성우 분)의 처지에 공감했다. 앞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촬영 당시,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싶었지만 마음 같지가 않아서 아쉬웠다고.

“하재관 부장이 도라희를 답답해 하는 걸 보고, 저를 답답해 했을 선배들의 마음이 헤아려졌어요. 시간에 쫓겨 눈 앞의 것에만 충실하다보니, 다음 신에서 감정을 잡지 못해 괴로워하곤 했죠. 당시 ‘애한테 시간을 줘야지’라고 다독여 주시는 선배를 만나면 위안이 됐어요.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 코가 석 자니 벅차더라고요.(웃음) 알아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박보영은 흥행의 달콤한 맛을 여러 번 봤다. ‘과속스캔들’(약 822만 명), ‘늑대소년’(약 665만 명) 등이 크게 성공했고, ‘오, 나의 귀신님’으로 안방극장에서도 ‘대박’이 났다. 그럼에도 흥행 성적엔 달관한 듯한 모습이었다. ‘과속 스캔들’의 개봉 당시 박보영은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우리 손을 떠난 것이다’, ‘만약 흥행한다면 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것 뿐이니 연연하지 말라’는 등의 충고를 들었다. 주위의 애정어린 조언 덕분에, 흥행 걱정에 지레 겁먹지 않게 됐다. 다만, 자신의 연기에 대한 평가 앞에선 언제나 긴장된다고 토로한다.

그런 박보영에게 올 하반기는 특별하다.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무르익은 연애 감정까지 표현하는 스펙트럼을 인정받은 덕이다. 보다 성숙한 연기에 도전하고 싶을 법 한데, “‘오나귀’의 멜로가 지금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수줍게 웃는다. 애틋한 연애 감정을 그럴 듯 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알게 됐을 때 진심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예전엔 빨리 성숙한 연기가 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없어요. 교복도 그만 입으라고 하지만, 안 어울릴 때가 되면 못하는 거잖아요.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죠.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역할에 제한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걸 해보려고요. 연기자로서의 시간이 남들보다 천천히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헤럴드경제DB]


▶“계집은 왜 소리를 하면 안되나유?” 금기에 맞선 수지=“판소리에 대한 부담감이 크긴 했어요. 그래도 걱정하기 보다는 ‘그러니까 잘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국민 첫사랑’ 수지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 제작 ㈜영화사 담담, ㈜어바웃필름)를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했다.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수지는 배역을 위해 박애리 명창에게 1년 가까이 판소리를 배웠고, 생애 처음 남장 연기에도 도전했다.

“(박애리) 선생님께서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하는 능력이 좋다고, ‘판소리 신동’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셨어요. 남장한 모습은 제가 봐도 잘생긴 것 같던데요?(웃음) 분장의 힘을 크게 느낀 게, 정말 아빠를 닮았더라고요. 거무튀튀하게 분장한 모습은 동생 같기도 하고, 예뻐진 모습에선 엄마가 보였어요. 하하.”

수지는 진채선이란 인물에게서 200여 년의 시간 차를 뛰어넘은 동질감을 느꼈다. 특히 진채선의 일화 속 당찬 면모는 자신의 기질과도 닮아 있었다. 진채선은 뱃심이 약하다는 스승 신재효의 지적에, 장대비 속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훈련에 매진한다. 촬영 당시 수지는 연습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감정을 끄집어내 연기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가수 데뷔 전엔 집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연습하러 간다고 하면 제가 아끼는 가방을 찢어버리겠다고도 하시고. 처음엔 댄스팀에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연습하고 대회도 나가고 그랬어요. 부모님 입장에선 오빠들도 많고 하니까 걱정이 많으셨죠. 제가 ‘그렇게 못미더우면 와서 연습하는 걸 보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정말 몰래 오셔서 보고 가셨어요. 땀 흘리면서 연습하는 모습에 마음이 바뀌신 것 같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 수지에게 가장 큰 과제는 진채선이 성숙해 감에 따라 소리를 달리 표현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소리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담아 즐겁게 노래하려고 했고, 후반부에는 마음이 전달되도록 감정에 집중하려 했다고 수지는 설명했다. 생소한 호흡과 창법 탓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판소리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연습에 매진한 결과, 진채선이 꿈을 키워갈 당시엔 쾌활하고 당찬 소리를, 신재효에게 연모의 감정을 느낀 뒤엔 애절하고 처연한 소리낼 수 있었다.

“‘드림하이’ 촬영을 끝내고 방송을 보니까, 당시 제가 졸리고 추웠던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 때 정신 차릴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이번엔 10시간 촬영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던 게, 좋은 장면이 나와야 ‘컷’ 하는 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대충 빨리 끝내려는 마음으로 촬영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고, 그 결과물을 보는 제 마음이 더 추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시간들을 후회없이 보내려고 해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heraldcorp.com (수지), 퍼스트룩 제공(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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