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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윤태진-정인영, 또 떠나는 ‘야구여신’…누가 그들의 등을 떠미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윤태진 정인영 KBSN 스포츠 아나운서가 5년간 몸 담았던 채널(KBSN)을 떠났습니다. 지난 10월 31일자로 계약이 만료됐다고 합니다. 또 한 채널의 간판 아나운서들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간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이동은 많았습니다. 이미 최희(KBSN), 공서영(XTM), 신아영(SBS스포츠)이 지난 몇 년 사이 프리랜서를 선언, 활동폭을 넓혔습니다. 새로운 소속사도 찾았죠. 김민아(현 SBS스포츠), 배지현 아나운서(현 MBC스포츠플러스)는 지난해 채널을 바꿔 스포츠팬과 만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언급한 모든 여자 아나운서들을 퇴사 혹은 프리랜서 선언 이전 한 번씩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이후 또 만난 사람들도 있죠.

윤태진 정인영 아나운서 역시 지난 5월 함께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퇴사 소식에 또 시끄러워졌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말들이 쏟아집니다. 또 연예인이 되고 싶어 나온 거냐는 반응도 당연히 따라왔습니다. 전례가 있으니까요.

인터뷰 당시 만났던 두 사람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것으로 이들의 퇴사 이유에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KBSN엔 웃지 못할 징크스가 있습니다. 스물아홉이 된 여자 아나운서들이 2015년 5월까지 총 8명이 퇴사했습니다. 윤태진(29)이 여기에 이름을 올리며 숫자는 아홉 명으로 늘었습니다. 


2011년 입사한 두 사람은 KBSN에서 선후배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기였습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대이동’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 업계에서 두 사람이 그나마 한 채널을 지키고 있던 이유는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두 사람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들의 자리 이동에 접근하기 위해선 업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세계는 경쟁은 치열하고, 생명력은 짧습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이어집니다. 초년병 시절엔 현장을 뛰어다니며 스포츠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각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쌓기 위해 수험생처럼 공부합니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노력의 가치를 평가받는 직군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금녀의 집’에 들어서기까지의 과정,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외모와 의상으로 쏟아지는 시선,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직업인 탓에 받아야 하는 이름없는 댓글을 통한 모욕 등 견뎌야할 것이 많습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태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수년전 자리를 떠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가 처음 생겨나던 시절 방송사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이들을 연예인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남성 시청자가 대다수인 스포츠 채널에선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노출을 권해 시청률을 높이는 전략으로 삼았다”는 겁니다. 일본 사례의 벤치마킹입니다. 애당초 스포츠 채널의 ‘여신 캐릭터’는 시청자가 요구하는 포맷으로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과 방송사가 서로의 요구에 충실했던 전략은 ‘노출 마케팅’이었죠. 물론 노출의 경우,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입니다. 

대대로 이어져온 전략과 시선은 후배들에게도 이어집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연예인과 아나운서의 중간 잣대로 평가”(정인영)받기에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게다가 TV는 늘 새로운 얼굴을 요구합니다. 상업전략이 만들어낸 존재였기에, 대중은 ‘꽃’이 될 새 얼굴을 기다리니 수명이 짧아집니다. 정인영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가 수명이 짧은 건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구조적인 부분도 있고, 주변의 상황과 본인의 선택도 있겠죠. 주변에서 그 곳에 있게 두지 않기도 하고요. ‘꽃’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실제로 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꽃을 꺾으려 하는 것이 우리를 더 빨리 단련시켜요”(정인영)

두 사람은 당시에도 그런 시기를 견디며 스스로를 단련시켰고, 아직 그 과정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업계의 여전한 현실입니다.

때문에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가 채널을 떠났던 이유는 개인 사정에 더해 방송사의 구조적인 문제, 직업의 특수성, 대중의 시각, 활동무대 축소(프로그램 폐지) 등으로 정리할 수 있었는데, 윤태진에게서 새로운 이유가 나왔습니다.

윤태진은 SNS에서 “정규직 심사를 앞두고 본인들이 큰 생각이 없었다는 내용은 마치 제가 인기에 취해 회사의 호의를 거절하고 박차고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언니와 저는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같은 선상에서 조금씩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다. 물론 선택은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몫이었고 또 저의 결정도 제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정규직 전환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지와의 지난 인터뷰에서도 윤태진은 “그동안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퇴사가 많고 순환이 빨랐던 것은 프리랜서나 계약 형태때문이라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저와 언니(정인영) 밑으로는 기수로 뽑아 데리고 오기에 (안정성에서) 장점이 된 것 같다”고도 했고요. 그러면서 “안 나가면 순환이 될 이유가 없겠죠. 사실 그만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타깝죠. 조금만 더 버티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윤태진에게서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말미 이 직업을 가지고 해보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윤태진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음, 꿈…지금 말씀드려야 해요? 나중에 하면 안돼요?”

굳이 안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정인영은 “기왕이면 이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선수나, 스포츠 종목에 관한 책이나 논문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윤태진의 답변입니다.

“꿈에 대해서 선뜻 대답을 못했던 건 그런 부분이 가장 커요. 뭔가 일어나는 상황에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상처를 받는 것을 보면 아직 겪어야할 것도, 배워야할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 더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것들에 여전히 힘들고 흔들리는 걸 보면요. 먼 곳에 기반을 두고 무언가를 해야지 하는 겨를이 없어요. 그 부분이 가장 컸어요. 아나운서로 자리를 못 잡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리를 잡아야지 생각했던 시간도 길었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 하루 오늘 방송 잘해야지, 내일 잘해야지, 한 시즌만 잘 넘겨야지, 이 시즌만 넘겨야지 하다 보니 5년차가 됐어요. 명쾌한 대답을 주지 못해 죄송해요. 높은 곳에 점을 찍어둔게 없어서…방송을 더 하고 쌓으면서 찾아봐야될 것 같아요.”

얼굴만 노출될 뿐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윤태진은 정말 헤어질 때가 돼서야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뭔가가 돼야한다면 새로운 길을 연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제2의 OO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열어준 누구. 지금까지 많은 선배들이 나갔다 안 나갔다 말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다양한 분야로 전향했죠. 또 다른 길을 열어서 선배들이 이런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선택지를 늘려주고 싶어요.”

윤태진이 프리랜서를 염두한 답변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 살아가는 환경, 처한 위치, 끊임없이 다독여야 하는 과정을 겪은 선배였기에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이 업계는 열정과 즐거움 만으로 한창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기엔 감당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물론 모든 직업이 다 그렇습니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그 곳에 들어가보지 않았기에, 우리 모두에겐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기에 타인을 모조리 이해할 순 없겠죠. 다만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에 대한 이해와 구조적 모순이 교차됩니다. 당연히 서로의 입장이 다릅니다. “키워주니 떠난다”고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은 로열티를 강요받습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퇴사도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처한 환경이 가장 좋지 않을 때 나오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요.

단지 충성도 높은 스포츠 팬들을 확보하고, 인지도를 쌓기에 수월하고, 그로 인해 프리선언이 활발하며, 많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이후 연예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그들을 도마에 올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평가는 내릴 수 있겠죠.

지금 정인영은 이미연 김현주가 소속된 씨그널 엔터테인먼트와의 소속사 계약을 통해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윤태진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와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 잊지 않고, 놓치 않고, 다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SNS에 적었습니다.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들이기에 지금은 응원이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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