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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닭은 어떻게 인간의 동반자가 됐을까
[헤럴드경제] ‘치맥’‘삼계탕’‘삶은 달걀’… 닭은 우리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먹거리를 넘어 문화현상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1억톤의 닭고기와 1조개의 달걀이 소비된다, 지구상의 모든 고양이, 개, 돼지, 소, 쥐, 새까지 모두 합쳐도 닭의 숫자를 넘지 못한다. 2012년 이란에서 닭고기 값이 세배로 폭등하자 경찰청은 폭동을 우려해 TV에서 닭고기 먹는 장면을 내보내지 못하도록 했다. 닭이 사라지면 재앙이다. 닭은 어떻게 전 지구인들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된 걸까. 과학저널리스트 앤드루 롤러가 전 세계를 무대로 닭의 행적을 밟았다.

‘치킨로드’(책과함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닭과 우리의 오랜 동반자 관계의 마법같은 얘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치킨로드/앤드루 롤러 지음, 이종인 옮김/세계사]
책은 현대 닭의 조상 종인 적색야계로부터 시작된다. 길들일 수 없는 표범 같은 적색야계가 동남아시아의 밀림에서 출발해 태국을 거쳐 인도를 지나 다시 메소포타미아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간 여정을 따라간다. 또 멜라네시아에서 원주민의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하와이 군도와 이스터 섬으로 퍼져나간 과정, 그리고 중국 남부로 들어가 한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간 경위를 자세히 추적해 간다.

닭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등장한 사건은 기원전 1476년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 마리의 닭이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인 테베에 의기양양하게 입성한 것이다. 웅장한 말들이 끄는 황금과 호박금으로 장식된 전차에는 전리품들이 가득했다. 투트모세 3세가 메소포타미아 원정에서 승리한 전리품에는 바빌로니아 군주들이 파라오에게 바친 네 마리의 이국적인 새들도 있었다. 다름아닌 적색야계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닭은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였다. 이 사실은 1923년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카터는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굴하던 중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적색야계의 형체를 갖춘 집닭의 가장 초창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닭 그림이다. 카터는 흥분하며, “고대에 이미 닭의 사육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닭은 나일강의 습한 환경에서 번식하는 진드기와 모기를 먹어치우고 시간까지 알려주며 농부들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이전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구에서 가장 유익한 새로 등장할 채비를 갖춘 셈이다.

나일 계곡에서 파키스탄 서쪽 끝에 있는 적색야계 서식지까지의 거리는 4000킬로미터. 닭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사건은 투트모세 3세의 통치시기보다 딱 1000년이 앞선다. 세계 3대 도시 문명의 발흥시기와 겹치는 닭의 최초 여행은 인더스 강에서 시작됐다.

닭은 종교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독일 고고학자들은 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을 발견했다. 고대 아시리아 수도인 아수르의 무너진 왕의 무덤에서 여성의 두개골과 아주 섬세한 원형 상아 통을 발견한 것. 상아 통에는 아시아 대륙에서 온 닭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 작은 상아통은 기원전 14세기 후반의 물건으로 투트모세 3세가 침공한 시점으로부터 1세기 정도 뒤의 것이다. 닭은 기원전 1200년과 600년 사이에 오늘날의 이란인 페르시아에 도착하는데 조로아스터가 탄생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고대사회에서 페르시아와 조로아스터 종교 만큼 닭에게 큰 역할과 위상을 부여한 적이 없었다.

한 조로아스터 전승에 따르면 “수탉은 악마와 마법사에 저항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중국의 한 전설에는 닭으로 변신한 인간 얘기가 나온다. 이 시기에 도교의 사제들은 새로운 사원을 축성하고 악령을 물리치고 전염병을 쫒아내기 위해 닭을 희생물로 바쳤다. 수탉을 입 가까이 가져다댐으로써 원치 않는 악령을 호흡을 통해 내보내는 사제의 동작이 오늘날 투계꾼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다. 일본 신도에서도 위대한 태양여신인 아마테라스 호미카미에게 하얀 닭을 바친 기록이 있다. 닭은 1세기 초에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서 빛, 진리,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 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닭의 효용은 적지않다. ‘살아있는 약상자’에 비유할 정도다.

고대 그리스에서 닭은 치유와 부활을 상징했으며, 현재 달걀은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시험관으로 쓰인다. 루이 파스퇴르는 닭을 이용해 최초의 근대적 백신을 만들었다. 또 닭은 내재된 인지능력을 통해 인간 자폐증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오늘날 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구의 단백질원이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서 시작된 치킨은 전세계 치킨사랑의 기원이 됐다. 야생 닭이 어떻게 가축이 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됐는지, 더 많은 살코기를 얻기 위한 사육방법과 품종개량은 인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등 단순한 먹거리에서 문화인류사의 닭으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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