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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앤스토리] ‘한게임’부터 ‘엔진’까지…우리나라 게임역사와 호흡해 온 ‘남궁훈’ 대표
[헤럴드경제=황유진 기자]“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였는데, 왜 홍시맛이 나냐고 물으신다면…”

대장금에서 ‘절대미각‘을 지닌 장금이가 왜 홍시맛을 느꼈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을 한 것처럼 “왜 당신의 청춘을 게임에 바쳤냐”는 질문에 “게임이 좋아서 게임과 관련된 일을 계속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1999년 ‘한게임’ 창업부터 ‘게임인재단’ 설립까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발자취와 함께 걸어온 남궁훈 엔진 대표다.

그는 스스로를 우리나라 IT 벤처 창업 1세대의 ‘막내’라고 표현하면서 “시대를 잘 타고났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여기까지 왔다”고 겸손한 자평을 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 우리나라 IT 벤처의 황금기를 이끈 이른바 ‘86학번’ 형님들을 만나 IT 업계에 눈을 뜨게 됐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벌써 강산이 두 번은 지날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설명이다. 최근 남궁 대표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그의 ‘흑역사(?)’부터 ‘전성기’까지 롤러코스터같이 흥미진진한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남궁훈 엔진 대표는 ‘한게임’의 전성기를 거쳐 게임인들을 양성하기 위한 ‘게임인재단’을 설립하기까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성장과 함께 호흡해 왔다. 그는 “지금에 이르는 성공을 일구는데 도움을 받은만큼 게임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앞으로의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IT 벤처인들의 탄생신화(?) ‘여의도 통신 동호회’=남궁 대표의 게임벤처 인생은 여의도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 대중을 상대로 한 PC통신 상용화가 막 시작될 무렵, 여의도가 일종의 테스트 지역이 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일찌감치 PC통신 전용 단말기를 이용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남궁 대표를 비롯한 여의도 거주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하이텔’ 내의 ‘여의도 통신 동호회’는 PC통신 초창기 커뮤니티로 크게 활성화됐다. 그는 이 커뮤니티의 대표 시삽(sysopㆍ운영자)으로 활동했다.

“실제 IT 업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 중에 ‘여의도 통신 동호회’ 출신이 많아요. 요즘 많이 쓰는 ‘번개(벙개)’라는 말도 그 때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정도로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급만남 형태의 ‘번개’모임을 자주 가졌고, 업계 ‘형님’들로부터 PC통신 등 IT 산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 여러 여건이 관련 일을 경험하기 좋은 환경이었어요.”

현재 위의석 SK텔레콤 상품기획부문장도 여의도 통신 동호회 출신이다. 남궁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SDS에 입사하게 된 계기도 위 본부장이 당시 몸담고 있었던 ‘아이네트’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어느 날 형님이 전화만 받으면 되는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처음 갔을 때 아이네트가 건물 한 층의 4분의 1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가니까 한 층 전체가 다 사무실이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10개층을 사무실로 이용하는 광경을 보게 됐죠.”

남궁 대표는 당시 국내 최초 인터넷서비스기업(ISP)이었던 아이네트의 놀라운 성장속도를 직접 목도하면서 PC통신 시장의 미래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PC통신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그럼 PC통신 사업을 하는 회사를 들어가면 되겠네?’ 싶었어요. 당시 삼성SDS가 ‘유니텔’ 서비스를 하고 있어서 삼성SDS 유니텔 사업부를 지원해 입사를 하게 됐고, 거기서 지금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만나게 됐죠. 그 때가 벌써 18년 전인 1997년 무렵이에요.”

▶‘뜨거운 눈물’, ‘뜨거웠던 열정’… 한게임 창업기= PC방 앞에서 한 사나이가 눈물을 훔친다. PC방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막 쫓겨난 직후다. 한 겨울 칼바람이 뼛속까지 스민다. 배도 고프다. “단무지를 주는 1200원짜리 라면을 먹을까, 김치를 주는 1500원짜리 라면을 먹을까.” 고민은 잠시. 오늘도 ‘단무지나 김치나’라며 1200원짜리 라면을 주문한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기운이 눈물 때문인지 라면 국물 때문인지 모르겠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 PC방 아르바이트생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보니 부모님 생각도 난다.

삼성SDS를 다니다 1999년 김범수 현 카카오 의장과 문태식 현 마음골프 대표와 의기투합해 한게임을 창업하면서 남궁 대표의 하루하루는 ‘고군분투 생존기’나 다름없었다. 김 의장과 문 대표가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 당장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PC방 관리프로그램인 ‘미션데스크’를 전국의 PC방에 팔아 수익원으로 삼았는데, 이 일을 남궁 대표가 맡았던 것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지만 영업이란 녹록지 않았다. 그 때 남몰래 눈물을 흘렸던 일화는 지금에서야 밝히는 숨기고 싶은 ‘흑역사’다.

“고스톱 게임을 개발하면서 ‘고스톱은 3명이 들어와야 게임이 진행되는데 2명만 오면 어떻게 하지?’를 고민할 정도였어요. 그 때는 확실하게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죠. 힘들고 서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프로그램 하나를 팔면 직원 월급을 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했었어요. 덕분에 전국 PC방에 대해서는 저 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그 때의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전국의 PC방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면서 나중에는 PC방 아르바이트생의 눈빛만 봐도 의사결정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만큼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선수’가 됐다. 감도가 떨어진 마우스를 고쳐주고, 고장난 PC도 봐주면서 전국의 PC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다. 나중에는 10명중 9명은 남궁 대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그렇게 PC방 관리프로그램 1억 5000만원치를 팔았다.

“‘저 집에 잠깐 다녀올게요’가 퇴근인사일 정도였으니까 PC방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참 열정적으로 일했었어요. ‘고스톱’, ‘테트리스’, ‘지뢰찾기’ 등 한게임의 첫 게임들은 출시하자마자 소위말하는 ‘대박’을 터트렸고 노력한만큼 결실도 보게 됐죠”

▶‘학교’ 설립의 꿈, ‘게임인재단’ 설립으로=이후 한게임이 성장하면서 당시 NHN과 합병을 했고 남궁 대표는 NHN USA 대표이사 등의 직책을 거치게 된다. 한게임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NHN 안에서 다양한 게임 사업을 담당한 뒤 그는 2009년 CJ 인터넷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고 2012년에는 위메이드엔터네인먼트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 시절에는 카카오에 지분 투자를 하고 링크투모로우, 피버스튜디오, 리니웍스 등 모바일 게임사들을 잇달아 인수해 히트작을 내면서 흑자전환을 성공시키는 등 성과를 냈다.

누가봐도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와중이었지만 남궁 대표는 잘나간다는 소리를 들을수록 ‘게임 인재 양성’ 등 교육에 대한 꿈이 마음속에서 커졌다고 했다. 실제 그는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남궁 대표는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2013년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직을 사임한 뒤 그해 11월 ‘게임인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출자금 21억원의 상당액을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가 지원하고 남궁 대표의 사재를 더해 게임전문인력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게임업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 성취가 많아질 수록 제가 받은 만큼 후배들을 양성하고 키우면서 돌려줘야 한다는 부채의식 같은 게 생겼어요. 교육대학원에 다니면서 게임관련 학교 설립의 꿈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제 인생에서 어떻게 보면 ‘한창 때’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게임인재단 설립에 쏟는 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결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업계에서 주가를 올리던 시기에 모든 직을 내려놓고 개인 사재까지 털어가며 게임인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데는 남궁 대표의 경험도 한 몫 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성공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게임 시절 게임산업진흥원의 중ㆍ소 게임 사전제작지원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당시 당구 게임을 출품해 600만원을 받았어요. 엄청나게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단순히 돈을 받는다는 의미를 넘어 ‘가능성’을 인정받는 느낌을 줬거든요.”

남궁 대표는 게임업계에 ‘희망의 씨앗’을 널리 뿌린다는 마음으로 게임인재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임인재단이 ‘힘내라! 게임人상’을 만들고 1000만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을 비롯해 다각도의 멘토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먼 훗날에라도 누군가가 ‘게임인재단에서 지원과 멘토링을 받았던 것이 지금까지 오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하는 사례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죠. 그리고 게임인재단이 선순환의 마중물 역할을 해서 게임업계 전반에 내리사랑처럼 이어지면 더욱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새로운 시작 ‘엔진’, ‘게임인’들에게 실질적 도움 주고파=남궁 대표는 최근 ‘엔진’ 대표로 취임했다. 게임인재단을 운영하면서 중ㆍ소 게임사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더 가까이서 지켜봤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화의 절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원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한계도 동시에 깨닫게 됐어요. 지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ㆍ소 게임사들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인 방법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엔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엔진은 게임 퍼블리싱의 핵심 역량으로 꼽히는 게임다듬기(폴리싱), 마케팅, 펀딩 등을 모두 아우르는 서비스를 중ㆍ소 게임사들을 대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엔진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 ‘폴리싱’을 맡고, 카카오의 마케팅, 벤처캐피털의 펀딩까지 더해 보다 완성도 높은 ‘중ㆍ소 게임 키우기’ 시스템 구축에 돌입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새로운 방식의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벤처캐피털, 플랫폼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 관계를 맺고 시너지를 낼 때 인디 개발사들에게도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모바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전의 일환으로 ‘사행성 없는 보드게임’의 흥행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카카오와 손잡고 모바일 보드게임 시장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사행성 요소를 빼도 모바일 보드게임에서 충분히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룰을 탈피해서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만 경쟁력을 지킬 수 있죠. 성공을 기대하려면 일단 시작을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더 많은 중ㆍ소 게임사들의 성공모델을 제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또 새로운 시작을 하려합니다.”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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