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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주거 사다리]“내집요? 편히 살 전월세라도 많았으면…” 서민들 깊은 한숨
‘월세의 깊은 늪’에 빠진 20대
안정된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
수십만원 월세 내고 나면 생활비 빠듯

‘외곽’으로 밀려가는 30~40대
서울서 6억원짜리 아파트 대출금만 4억
이자 200만원 못견뎌 경기도 외곽으로

‘달랑 집한채’만 남은 50~60대
노후대책은 집한채…역모기지로 생활
자식들에게 물려 주는 건 꿈도 못 꿔


“아파트는 언감생심이고 깨끗한 빌라면 좋겠어요.”

직장인 곽민지(여ㆍ26) 씨는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전용 25㎡짜리 복층형 오피스텔에 산다. 친오빠, 남동생과 함께 지낸다. 보증금 2000만원은 부모님 도움을 받았고 월세 50만원은 형제가 나눠 낸다.

그는 “월세만 따지면 50만원이고 관리비, 전기세, 도시가스비, 인터넷 사용료까지 더하면 70만~80만원에 달한다”며 “식비 등 생활비로 매달 백만원을 넘게 쓰니 수입이 끊기면 당장 나앉아야 할 판”이라고 한숨지었다.

곽 씨의 사례는 20대, 30대 ‘에코세대’(1979년~1992년생)에겐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월급을 모아 내집 마련 밑천을 마련하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월세의 늪’에 빠진 20~30대=혼자 지내는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은 월말이 두렵다. 당장 수십만원 되는 월세를 내야하고 교통비나 휴대전화 요금까지 빠지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1인가구의 한달 생활비 중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9.7%(2013년 기준)로 모든 주거유형 가운데 가장 높다.

은평구에 혼자 사는 최모(33ㆍ남) 씨는 최근 “내가 영영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고 하소연한다. 3년차 영업사원인 그의 월급은 260만원(세후 기준)쯤 된다. 월세(55만원)와 관리비 등 주거비만 80여만원이 든다. 업무 때문에 산 차량 유지비와 스마트폰비, 식비 등 고정비용만 매달 100여만원이 들어가니 아끼고 아껴봤자 저축할 돈이 별로 남지 않는다. 그는 “매달 50만원 모으기도 빠듯하다”며 “월세를 아끼려고 전세를 구하고 싶지만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했다.

집에 대해선 체념을 넘어 ‘초탈’한 젊은이들도 있다.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서 인간관계ㆍ주택구입ㆍ희망ㆍ꿈을 추가로 포기한 ‘7포세대’들이다. 취업준비생 강홍진(28) 씨는 “당장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없는 상태에서 결혼하고 집을 장만한다는 건 꿈 같은 이야기”라며 “남들처럼 돈 모아서 집 사려는 목표를 세우면 인생 전체가 고달파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외곽으로 밀리고, 월세로 떨어지는 30~40대=30~40대들은 전세 재계약 시즌마다 돌아오는 주거비 상승 부담에 허덕인다. 버티지 못하면 서울 외곽으로, 경기도로 밀려난다.

지난해 결혼한 김모(30ㆍ여) 씨는 강서구 화곡동에 전세 7000만원짜리 작은 빌라에 신혼집을 차렸다. 첫째를 임신하면서 조금 더 큰집을 찾았지만 서울에선 감당할 만한 전세가 없었다. 결국 최근 김포 고촌동에 있는 전용 59㎡ 아파트를 2억7000만원을 주고 샀다. 1억4000만원은 은행 빚을 졌다. 어렵사리 집을 장만했어도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우스 푸어’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김 씨는 “올해 봇물 터지듯 공급된 분양 아파트가 입주를 하는 2~3년 뒤엔 집값이 폭락할 수 있다는 뉴스를 봤는데 걱정이 많다”며 “매달 40만원 가까운 이자를 내게 됐는데 금리가 오를까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해 왕십리에 있는 전용 84㎡ 아파트를 분양받은 강모(35) 씨 부부는 ‘공급과잉→집값 폭락→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그는 집값 6억여원 중 4억원을 대출로 충당했다. 말 그대로 ‘하우스푸어’다. 부부는 한달 소득의 40%인 214만원을 원리금 갚는데 쓰고 있다. 강 씨는 “5년간은 고정금리가 적용되지만 그 이후에 이자 부담이 커질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자식 물려주는 건 꿈도 못꿔” 50~60대의 절규=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50~60대 가운데엔 ‘집=전 재산’인 사람들이 많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의 보유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이라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내집 마련’을 지상과제로 삼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더 이상 아파트 한 채 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특히 전용면적 100㎡이 넘는 중대형 아파트를 가진 이들에겐 저렴한 소형 주택으로 갈아타는 ‘다운사이징’이 일반화됐다.

이미녕(55ㆍ여) 씨는 지난 2007년 초 동작구 대방동에 전용 114㎡ 아파트를 샀다.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 큰 아파트가 필요했고 시세차익도 기대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7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두 아들은 독립을 앞두고 있다. 이 씨는 “더 작은 집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인근 부동산에 상담을 받아봤는데 ‘요즘엔 큰 집 팔기가 더 힘들다’는 얘길 들었다”며 “남편이 내년 초에 퇴직하는데, 이러다간 손해를 보고서 팔고 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고 했다.

최근엔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역모기지)에 가입하는 중장년층도 늘어나는 추세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이 나오고 정부가 보증에 나서기에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용인에 사는 김모(74ㆍ남) 씨는 지난 2월 시세가 3억원되는 집을 담보로 종신지급형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달마다 75만원 정도 받고 있다. 고정금리 덕분에 집값 출렁임에 상관없이 같은 금액이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요즘엔 세금을 따지면 집을 증여해도 자식에게 실제 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다”면서 “차라리 노후주택을 가지고 역모기지에 가입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는 은퇴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안정적인 주거는 무리한 희망인가요?=취재를 하면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적당한 가격대의 집을 찾아서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한 건설사에 근무하는 정모(35) 씨는 “최근 높아지는 분양가를 보면서 도대체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되기도 한다”며 “저렴하고 깨끗한 소형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악구 봉천동의 C부동산 대표는 “무주택자는 전셋값 폭등에 월세부담에 허리가 휘고, 이사철이면 대출 부담에 허덕이고 있는데 정부는 이들에 대한 세금감면은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다”며 “집 없는 사람들에겐 취득세나 재산세 부담을 파격적으로 감면해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박병국ㆍ박준규 기자/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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