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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이 ‘1만원권 지폐’ 모델이 된 까닭은?
[HOOC=윤정식 객원 에디터] 화폐속에는 각 나라별로 대표하는 인물과 상징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무언의 외교관이죠.

9일은 한글날. 한글 창제를 주도한 세종대왕은 어떻게 해서 1만원권 지폐 모델이 됐을까요? 세종대왕은 신사임당을 모델로 한 5만원권 지폐가 나오기 전만해도 항상 최고액권 화폐 모델 자리를 지켰습니다. 


세종대왕이 처음 지폐 모델로 등장한 1960년 8월15일 나온 천환권. [사진출처=한국은행]

▶1만원권 세종대왕…공인된 국민모델


①최장수 지폐 모델

만원권의 주인공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국내 화폐계 최장수 모델이다. 세종대왕이 화폐계에 등장한 것은 1960년 8월15일. 당시 1000환권에 첫 등장했다. 그 전만해도 이승만 대통령이 고액권 지폐모델이었다. 그러나 제2공화국이 출범하던 1960년 광복절에 단행된 화폐개혁에서 세종대왕에게 밀려났다. 세종대왕은 1961년 500환권에서도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이 두 지폐는 1962년 사라졌다.

세종대왕은 1950년 당시 최고액권 화폐이던 1000원권 모델로 재등장했다. 그리고 1973년 1만원권을 발행하면서 현재와 같은 만원권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60대 지폐를 보면 세종대왕은 지금보다 다소 갸름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세종대왕이 모델로 들어간 1961년 500환권. [사진출처=한국은행]

②만원권 지폐 모델 원래는 세종대왕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1972년에 1만원권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도안소재로 앞면에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의 본존석가여래좌상을, 뒷면에 불국사 전경을 담은 만원권을 발행키로 하고 대내외 공고절차까지 마쳤다. 그러나 일부에서 도안 소재가 특정종교와 연관이 깊다고 거세게 반발함에 따라 그 만원권을 발행하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인 1973년 석굴암과 불국사를 세종대왕 초상과 경복궁 근정전으로 바꾸어 발행하게 되었다. 때문에 당초 오천원권과 같은 시기에 발행하려고 했던 계획이 수정되면서 만원권 발행이 오천원권보다 한해 늦게 발행됐다. 


1965년 나온 100원짜리 지폐. 역시 세종대왕이 모델이다. [사진출처=한국은행]

▶5만원권 신사임당…논란 속 선정

2009년 첫 발행된 5만원권 속 인물로 선정됐다. 당시 도안 후보로 올랐던 김구,유관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며 국내 화폐 주인공 대열에 새 인물로 합류했다.

당시 일부에서 반발이 극심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 제고 등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5000원권 율곡 이이…‘서양율곡’ 논란도

율곡 선생의 초상을 보면 서양인처럼 콧날이 오똑하고 눈매가 날카로워 차가운 인상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서양율곡’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율곡의 초상은 조각가 김정숙씨가 제작한 동상을 바탕으로 해 영국의 조폐기관에서 원판이 도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1000원권 퇴계 이황…한때 지폐 앞 뒷면에 동시등장

1975년 8월 발행한 1000원권에서 첫 선을 보인 퇴계의 초상은 세종대왕이나 율곡의 모습에 비해 몹시 여의고 말라 보인다. 퇴계는 어렸을때부터 잔병이 많았고, 성품이 깔끔했다는 고증이 반영된 결과다.

2007년에 발행된 1000원권에서도 인물 초상은 현재 퇴계 이황을 그대로 유지했고, 앞 뒷면에 이황선생의 초상을 동시 반영하면서 파격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당시 재밌는 일화로 퇴계선생이 도안의 앞뒷면 동시에 등장하게 된 원인은 ‘파격적인 존경심’이 아닌 한국은행 담당자의 ‘까다로운 입맛’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순신 장군은 왜 100원

충무공 이순신은 100원짜리 동전 모델. 이순신 장군은 한때 500원권 지폐 모델로 동시 활약하기도 했다. 1973년 발행된 500원 권이다.

hoo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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