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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9돌 한글날①] ‘북녘영희’는 ‘남녘철수’ 말 절반도 못 알아듣는다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경기도 태생인 김철수(32) 씨. 함경도 출신의 리영희(30ㆍ여) 씨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물었다. 이에 리씨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일 없습네다(잘 지냈습니다)”라고 답했다. 순간 김씨의 표정이 굳는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도 김씨는 용기를 내 “뭐라도 드시러 가시겠어요. 전 도넛을 좋아하고 근처에 도시락 집도 있는데”라고 하자 리 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못 알아듣겠단 얼굴이다. 도넛과 도시락을 북한에선 각각 가락지빵, 곽밥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일은 569돌을 맞은 한글날이다. 하지만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남북의 한글은 이질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이젠 서로가 외래어처럼 느껴지는 현실이다. 지성인이란 대학생들의 한글 파괴 현상도 심각해진 상태다. 반대로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요즘이다. 이런 사실들을 세종대왕은 아실까….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모습. [헤럴드DB]

이 상황은 맞선에서 만난 미래 남남북녀의 만남을 설정해 가상으로 구성해 본 내용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오는 9일 569돌 한글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의 언어는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시간 동안 사고, 문화, 생활방식, 어문정책, 경제 등 다각적인 면에서 단절과 차이를 겪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각자의 언어에 스며들어 왔다.

양쪽 모두 19개 모음과 21개 자음인 한글(북한은 조선글자)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어, 표기법, 문체, 어체 등 언어 교류 없이 70년이 흐르다 보다 어느새 상대의 언어가 외래어처럼 느껴지는 생경함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남북한의 사전에 등록된 단어 중 한쪽에만 등재된 말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한용운 편찬실장이 최근 국립국어원에 제출한 ‘남과 북의 사전’이란 특별논문에 따르면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총 43만7865개의 표제어 중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엔 없는 말이 22만8474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 사전에 있는 말 52% 정도가 북한 사전엔 없는 것이다. 사전 표제어로만 본다면 북한 주민이 남한 사람이 하는 말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 할거란 얘기다.

표준대사전에만 있는 말 중엔 ‘군걱정(기우)’, ‘말맛(어감)’ 등 외래어를 한글로 순화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달동네’, ‘뜬잠’, ‘숯불갈비’ 등 남한 사회상이 반영돼 생겨난 용어들이다.

‘만화방’, ‘배낭여행’ 등 한자어나 ‘룸메이트’, ‘리더십’ 등과 같이 외래어가 직접 유입된 낱말도 북한 사전엔 없다.

반대로 조선말대사전의 총 표제어 수는 35만2943만개로, 이 가운데 표준대사전엔 없는 말은 13만8472개다.

전체 대비 약 39% 정도인데, 남한 역시 북한 주민이 하는 열 마디 중 네 마디 정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에서 한자말정리사업과 어휘말정화사업이 추진되면서 정책적으로 순화된 고유어가 많아진 영향이 크다.


한자어ㆍ 외래어를 순화시킨 ‘먼거리(원거리)’, ‘손기척(노크)’, ‘순간타격(스파이크)’, ‘범벅이말(외래어가 섞인 말)’, ‘뒷셈(정산)’, ‘찬단물(냉주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한용운 실장은 “남북의 어휘 이질화는 오랜 기간 진행돼 온 것이고 차이가 사회 체제와 생활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라 하루아침에 극복되진 않을 것”이라며 “독일처럼 체제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질 수 있겠지만, 언어 통일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기에 어문 생활에서도 미리 통일 시대를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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