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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홍성원] 老長투혼 관전법
싸움 구경하다 보니 ‘더, 좀더 강력하게’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 용서하지 않겠다”(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ㆍ7선)는 최후통첩에 “그만합시다”(김무성 대표ㆍ5선)라고 받아 친 건 싱겁게 끝날 ‘막장 드라마’ 같아 성에 차지 않았다.

새 국회의원을 뽑는 내년 총선에 친박(친박근혜)과 비박 중 어느 쪽 라인을 더 많이 후보로 내세우느냐의 밥그릇 전쟁. 김 대표의 휴전 제의로 ‘급마무리’ 됐지만 물밑 신경전은 후끈하다.

도도한 척 헤엄치려는 백조 코스프레다. 선거 때만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갖는 국민에게 전모를 파악하게끔 여유를 남겨줘도 될 텐데 치부를 내보이긴 싫은 모양이다. 가관(可觀)은 이들 여당 계파의 수장과 준(準)보스의 충돌을 지켜본 후배 의원들의 표정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엔 긴장감이 돌았다. 한 의원은 ‘얼음땡’ 같았다고 했다. 혀를 차는 국민이 많은데 ‘얼음땡’이라는 앙증맞은 표현을 하니 김무성 대 서청원의 매치는 일단 ‘노장투혼’이라고 해두겠다.

노장 중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은 단연 고영주(66)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다. 국정감사장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등 메가톤급 발언을 쏟아냈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확고한 믿음에 따라 이런 말을 하고 있단 게 읽힌다. 야당은 발칵 뒤집혔다. 급기야 그를 퇴진시키려고 긴급의총도 열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백발 노장의 ‘단독 드리블’에 여러 사람 곤혹스럽다. 

노장의 활약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린 인물로는 이순진(61)합참의장을 꼽을 수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5ㆍ16’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좌불안석이었다. 임명권자를 의식한 듯 ‘쿠데타’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 요리조리 피해갔다. 표정엔 군기가 잔뜩 서렸지만 눈빛은 흔들렸고 말투는 어눌했다. 65만 국군의 작전 지휘관에 걸 맞는 결기와 카리스마를 찾긴 힘들었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들이 “비겁한 의장이 되지 말라”(주호영)고 훈수를 뒀을까.

이런 노장들의 행보는 우리의 자화상,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게 더 뼈아프다. ‘너는 누구 라인이냐’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고 줄을 잘 타는 사람을 인복(人福)있다고 해왔다. 출세의 동아줄을 잡으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것도 인지상정으로 치부했다. 남을 넘어서야 산다는 인식이 깊게 박힌 결과다.

해외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단 둘이 꾸역꾸역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인생 고달파도 그 곳에서 애 키우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한 장면을 전해왔다. “담임 선생님이 내 아이가 조금 경쟁적인 것 같다고, 달리기도 항상 1등 하려고 하고, 줄 서는 것도 항상 앞에 서야 하고, 수학문제 풀이도 남들보다 빨리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지금 시기엔 1등이나 앞서 나가는 것보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한국인 특유의 강박증은 얼굴 화끈거린다. 원로급들은 일장춘몽에 매달리지 말고 이런 증상 완화에 역할을 해야 한다. 노익장은 그런 데 발휘해야 박수 받는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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