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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변죽만 울리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뿔난 시민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평소 봐 뒀던 지갑을 싸게 살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백화점 한 층에다 이월 상품 모아 둔 게 블랙프라이데이였네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한창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은 회사원 김모(28) 씨는 크게 실망했다.

김씨가 관심이 있던 명품 브랜드는 세일에 동참하지 않을뿐더러, 광고에서 보았던 ‘최대 50~70%’ 할인하는 곳은 백화점 10개층 중 한개 층에 자리한 행사장 뿐이었다. 김씨는 “사람은 많은데, 선택지가 너무 좁았다”며 씁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1일부터 오는 14일까지 2주간 진행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정부 주도 하에 유통업체들의 참여로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소비를 활성화해 내수를 살리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특히 정부는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21만여 명 요우커가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세일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지난해까지 외국인만 세일 혜택을 볼 수 있었다면 올해부터는 내국인도 세일행사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백화점 71곳, 대형마트 398곳, 편의점 2만5400곳 등 대형 유통업체 2만6000여개가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지만, “도무지 살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 가을 정기세일과 겹쳐 체감 할인 효과가 적은데다, 명품 브랜드나 가전제품 등이 세일 품목에서 빠져 요우커나 내국인이 통크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기자가 찾은 한 백화점은 ‘코리아 그랜드세일’ 마크를 사용해 적극적으로 세일을 홍보하고 있었지만, 점원들은 5~20% 정도의 할인율을 붙여두고 ‘백화점 정기세일’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백화점 본 매장들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율’이라던 50~70% 할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9층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장에서만 옷, 신발, 아웃도어용품, 주방용품, 핸드백 등 잡화를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평소 백화점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매대 상품들을 한 곳에 모아 크게 행사장을 크게 차린 정도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양모(52ㆍ여) 씨는 “몇 년 전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화점 전체가 파격세일을 해 이것저것 고르던 것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화장품 가게와 옷가게가 즐비한 명동 거리도 ‘세일 잔치’가 벌어질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대부분 여름 세일이 끝나고 가을 신상품들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체감 물가’는 높아진 느낌이었다. 대형 신발매장 등에서 코리아 그랜드세일 현수막을 붙여 놓고 물건을 20~30%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요우커 가오위에(19ㆍ여) 씨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해서 처음 들어본다며 “지난번에 왔을 때와 비슷하게 옷을 샀는데 쇼핑에 쓴 돈이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통상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진행하던 코리아 그랜드세일을 정부의 내수 진작 드라이브에 맞춰 8월 중순부터 앞당겨 진행하고, 중간에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까지 새롭게 끼워 넣으면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행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업체 관계자는 “백화점은 사실 입점 매장들을 대상으로 임대업을 하는 것인데, 입점 점포들의 협조가 부족한 상태에서 백화점이 세일을 하려고 하니 품목도 적고 할인폭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유통업체가 대대적으로 세일을 홍보한 ‘상술’에, 잔뜩 기대했던 시민들 가슴만 멍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병관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로 조급하게 추진되다 보니 소비자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내수를 살리기 위해선 소비 진작이 분명 필요한 만큼 좀 더 면밀히 계획하고 큰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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