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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릿의 고민, 걸쭉한 南道사투리로 듣다
송보라·최지숙·조엘라·이원경 4인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압권…‘판소리햄릿프로젝트’ 8일부터 1년 6개월만에 재공연
“나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여”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여성 소리꾼이 햄릿을 자처한다. 한명도 아닌 네명의 소리꾼이 햄릿 내면의 목소리를 번갈아 가며 들려준다. 나이 서른에 부친상을 당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하는 햄릿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20~30대 젊은 소리꾼들이다. 이들은 수많은 선택 앞에서 햄릿처럼 방황하는 관객들을 울리고 웃길 예정이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구성진 소리로 ‘햄릿’의 고뇌를 전달한다. 20~30대 소리꾼으로 구성된 타루는 젊은 세대들이 판소리를 보다 가깝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꾀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악뮤지컬집단 타루]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햄릿프로젝트’는 오는 8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1년 6개월만에 재공연한다. 지난해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공연 당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과 판소리의 결합이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당시 입소문을 타고 관객이 점점 늘면서 판소리 공연이지만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판소리햄릿프로젝트’에는 타루 소속 소리꾼 송보라(32), 조엘라(32), 이원경(26)과 연극배우 최지숙(30)이 출연한다. 지난 30일 서울 당산동 연습실에서 만난 이들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인 내년에는 영국 세익스피어 글로브극장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며 까르르 웃었다.


‘판소리햄릿프로젝트’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햄릿이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 서로 다른 성격의 자아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송보라는 똑똑한 햄릿, 최지숙은 행동파 햄릿, 조엘라는 허당 햄릿, 이원경은 겁많은 햄릿이다. 극 진행 중간중간 이들은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나 삼촌인 클로디어스왕 등의 역할도 해낸다. 최지숙은 “연극쟁이들도 정극 ‘햄릿’을 어려워한다”며 “하지만 ‘판소리햄릿프로젝트’는 우리나라 고유의 입담으로 푸니까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쉽게 와닿는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부분의 작창(作唱)을 직접 했다. 대사도 “야가 진짜 미치긴 미쳤다 잉”과 같은 전라도 사투리와 “야이 십장생아”와 같은 현대적인 언어로 바꿨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눈대목은 햄릿, 클로디어스왕, 거트루드왕비, 레어티스가 등장하는 <결투가>다. 이들은 직접 칼싸움을 보여주지 않고 소리만으로도 결투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소리꾼들은 햄릿의 진혼제를 지낸다. 이들은 햄릿 의상을 훌훌 벗은 뒤 무대를 떠난다. 송보라는 “죽음은 다 벗어두고 가는 것이다, 죽음과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햄릿은 우유부단의 전형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거대한 시련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막상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이렇게 하는게 맞을까’ 엄청 고민하게 되잖아요. 저희 작품은 ‘햄릿이 흘러가는 사건들 속에서 어떤 고민을 했을까’에 초점을 맞췄어요”(송보라)

“20대에는 뭘 모르고 방황했다면 30대에는 뭘 알겠는데도 방황하는 느낌이잖아요. 30대가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겪기도 해요. 제가 30대가 되니까 눈앞에서 죽음을 바라봤을 서른살 햄릿의 고뇌가 무겁게 느껴졌어요”(최지숙)

원작은 진지하지만 ‘판소리햄릿프로젝트’는 어렵거나 무겁지 않다. 뮤지컬처럼 재치있는 대사와 춤, 노래로 인간적인 햄릿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앞서 타루가 공연한 국악 뮤지컬 ‘로감자와 줄게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과자(오감자, 꽃게랑)에 빗대 쉽게 전달했다.

“전통 판소리는 세월이 녹아있는 만큼 깊이가 있어요.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걸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잖아요. 저희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판소리를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팀이예요”(조엘라)

“스승님 중에는 전통 판소리가 아닌 다른 시도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얼마전 제주도에서 창작 판소리 공연할 때 조통달 선생님께서 와주셨는데 되게 좋아하셨어요. 이렇게 스승님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을까요”(이원경)

타루는 판소리란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고 부른다는 고정관념부터 깨버렸다. ‘판소리햄릿프로젝트’에서 이들은 검은 갑옷에 단발머리 가발을 쓴다. 조엘라는 평소 짧은 커트 머리에 귀에는 피어싱을 하고 다닌다.

“ ‘판소리하게 안 생겼다’, ‘할머니인줄 알았는데 되게 젊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젊은 소리꾼도 많고, 저희 역시 평소에는 개량한복이 아니라 또래들처럼 입고 다녀요”(조엘라)

송보라의 경우 “판소리하는 사람 처음 봤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봤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음악이지만 판소리는 힙합보다 대중들에게 멀게 느껴지는 장르다.

“타루는 전통 판소리를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나가는 깨어있는 그룹이예요. 영화는 영화관, 연극은 대학로에 가서 보면 되지만 판소리는 어디가야 들을 수 있는지조차 잘 모르잖아요. ‘판소리햄릿프로젝트’처럼 대중들이 쉽게 판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최지숙)

이들은 자체 제작한 홍보 동영상을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올리고, 렉처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앞길이 창창한 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인간문화재”나 “명창”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하는 것이 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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