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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발장의 분노? 소외계층 범죄 날로 흉포화
경기부진·생활고 여파 건수 급증
묻지마범죄 98%가 무직·일용직…살인도 매년 증가 사회안전망 위협



#.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특수절도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모(26)씨는 전과 4범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푼돈을 훔치다 15살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감옥에서 이씨는 다른 재소자로부터 ‘가위로 자동차 문을 여는 방법’ 등 새로운 범죄 기술을 배웠다. 이씨는 결국 출소후 한 달 동안 25차례의 절도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 올해 6월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묻지마 살인’의 피고인 라모(33)씨에 대해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라씨는 시내 골목길을 지나가던 5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주유소 일이 힘들고 사장이 나를 전과자라고 의심했다”며 “사고를 치고 구치소에 들어가면 일을 안 해도 될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라씨는 정신분열증으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취업난과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과 유사한 환경에 있는 소외계층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생계형이나 정신장애 범죄 증가는 한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씨나 라씨처럼 우리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저지르는 범행이 날로 흉포화ㆍ상습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생한 ‘트렁크 살인사건’ 피의자 김일곤(48) 역시 처음에는 단순한 생계형 범죄자에 불과했지만, 외톨이로 지내며 22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점차 ‘사회 증오’ 범죄자로 변해갔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면서 범죄가 흉포화되고, 묻지마 범죄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보복성 범죄가 날로 증가하면서 자칫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일 대법원에 따르면 뚜렷한 이유없이 타인을 살인하거나 살인 미수에 그쳐 법원에서 유 죄 판결을 선고받은 이들은 2010년 이후 35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같은 이유로 법원의 판결을 받았던 피고인이 4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5~6년 사이 9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2014년 한 해 동안에는 묻지마 살인범이나 살인 미수범에 대한 법원 선고가 10건에 달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이 별다른 직업이 없거나 정신지체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소외 계층 범행이 날로 흉포화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묻지마 범죄자의 범행 당시 직업을 분석한 결과 75%가 무직이었고, 23%는 일용직 종사자였다.

정신상태별로 분류해 보면 만성분노형이 45.8%, 정신장애형(37.5%), 현실불만형(16.7%) 순으로 나타났다. 재범률 또한 일반인의 2배 수준으로 상습화 경향이 뚜렷했다.

본지가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경찰청 자료를 보면 정신이상 및 정신장애 범죄자 수는 2012년 5298명에서, 2014년 6265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강간ㆍ방화ㆍ절도의 경우 3년 사이 40~50% 가까이 증가했고, 지난해 기준 이들의 재범률은 28.8%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범죄자 재범률 15.9%보다 2배 가량 높은 수치다.

소년범들의 재범률 역시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 2013년 기준 전과가 있는 소년범은 절반이 넘는 51.4%로, 전년도에 비해 9.8%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이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소외계층 범죄의 증가 원인으로 국가 차원의 시스템 미비와 범죄자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 등을 지적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소년절도범의 경우 직업훈련과 1대1 멘토링 프로그램을 병행했던 청소년들이 유독 낮은 재범률을 보였다”며 “무조건적인 관용이나 적대감보다는 바늘도둑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소외계층의 재범을 줄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양대근ㆍ김진원 기자/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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