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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내일은 슈퍼리치(22) - ‘난 철저히 마이너’, 뒷골목 악동들의 패션 창조한 ‘슈프림’ 창업자
 
슈프림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김현일 기자] 막바지 겨울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 2월 어느 날, 미국 뉴욕의 라파예트 거리가 한바탕 시끌벅적해졌다. 이 날은 패션브랜드 ‘슈프림(Supreme)’의 2015 S/S 시즌 신상이 출시되기 바로 전날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먼저 슈프림의 신상을 ‘영접’하고픈 사람들이 매장 앞으로 몰려와 긴 줄을 형성했다.

슈프림의 새 콜렉션이 출시될 때마다 벌어지는 이 진풍경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 모습이 새 아이폰 출시될 때의 풍경과 비슷해 슈프림을 애플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슈프림 마니아들은 매장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서로 어울려 춤을 추며 좀 더 흥겹게 신상을 맞이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단체’가 치르는 요란한 의식을 보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들은 ‘슈프림 광신도’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슈프림은 지난 20년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해왔다.

미국 뉴욕 라파예트 거리 슈프림 매장 앞에 늘어선 인파.

우리나라에선 최근 가수 지드래곤과 오혁을 비롯 인디밴드와 래퍼들이 슈프림 제품을 착용하고 방송에 나오면서 비로소 ‘언더’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1994년 슈프림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않은 건 단 하나. 바로 ‘마이너 정신’ 혹은 ‘뒷골목 정서’다.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절대 대중의 흥미에 맞추지 않겠다”며 비주류의 감성을 슈프림에 투영해왔다. 지금부터 소개할 그의 슈프림 경영방식에서도 철저히 ‘마이너스러움’이 느껴진다.

▶ 뒷골목 ‘문제아’들의 놀이터였던 1호 매장=슈프림은 원래 스케이트 보더들을 위한 브랜드로 출발했다. 제비아는 “90년대 뉴욕에서 스케이트를 제대로 타고 놀던 애들은 대개 18살~24살이었다. 패셔너블 해보이고 싶은 욕구가 컸고, 여자 꼬시는 것에 한창 관심을 쏟던 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옷차림은 볼 품 없었다. 당시 보더들에 맞는 제대로 된 패션매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비아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보더들을 위해 직접 패션 아이템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1만2000달러를 들여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에 오픈한 1호 매장은 금세 보더들의 아지트이자 놀이터가 됐다. 제비아는 보더들이 백팩을 맨 채 스케이트를 타고 바로 매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게다가 중앙에 움푹 파인 ‘볼(bowl)’까지 설치해 실내에서도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슈프림 매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볼(bowl).

슈프림의 콘셉트는 90년대 당시 뉴욕의 반항적인 사회 분위기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힙합씬에선 우탱 클랜(Wu-Tang Clan)이 등장해 ‘살벌한’ 비트와 가사로 거친 에너지를 발산했고, 거리에선 젊은이들이 벽과 버스정류소에 그래피티를 즐기며 욕구를 분출했다. 게다가 스크린에선 10대들의 스케이트 문화와 섹스, 마약중독, 에이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키즈(Kids)’가 개봉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슈프림을 ‘키즈의 현실판’이라고 했다. 제비아가 당시 비행 청소년들과 그래피티에 빠진 젊은이들, 래퍼들을 직원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제비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뉴욕의 골칫거리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이다. 당연히 슈프림엔 이들의 반항적인 정서가 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점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슈프림 ‘신봉자’를 양산하는 계기가 됐다.

1995년 개봉한 영화 ‘키즈’의 한 장면. 당시 10대들의 스케이트 문화와 마약, 에이즈 문제 등을 다룬 작품이다. 슈프림은 올해 개봉 20주년을 맞아 특별 한정판 티셔츠를 출시했다.

▶ 손님은 안중에도 없는 ‘시건방진’ 경영방식=슈프림은 그 상품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역설적으로 유명해졌다. 제비아는 “600개 완판이 가능하다고 해도 난 무조건 400개만 만든다”고 말한다. 한정판으로 출시하다보니 고객들은 더욱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에서 ‘득템’에 실패한 이들은 중고시장으로 몰린다. 슈프림 신상을 비싸게 되파는 ‘슈프림 테크’ 현상이 생길 정도다. 2012년 노스페이스와 손잡고 출시한 298달러짜리 코듀로이 재킷은 온라인에서 1분만에 다 팔렸는데 거의 동시에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같은 상품이 700달러에 올라오기도 했다.

슈프림 매장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일본, 영국 런던에 단 9곳만 영업 중이다. 지금의 인기라면 수백 개의 매장도 낼 수 있지만 제비아는 이를 거부한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도 신경쓰지 않고 내버려두는 슈프림의 무심한 응대방식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주류화ㆍ대중화를 싫어하는 그의 마이너적인 기질을 고려하면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슈프림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 유명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스케이트 보드를 선보여 왔다. 이는 예술품 대접을 받으며 콜렉터들의 인기 수집품이 됐다.

마냥 ‘불친절’한 것 같지만 사실 제비아는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은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수량을 줄이는 대신 품질에 주력하는 것을 택했다. 동시에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구체적인 수입액을 공개하는 대신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특별히 골치아픈 적은 없었다.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만큼 수익이 좋다”고 말한다. 현재 그의 개인 자산은 4000만달러 (약 475억원) 정도로 평가된다.

▶ 조용한 소년에서 악동들의 ‘대부’로=제비아에겐 ‘언더그라운드의 플라나간 신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플라나간 신부는 1900년대 초반 비행청소년들의 쉼터 ‘보이스타운(Boys Town)’을 설립하고, 사회가 포기한 아이들을 직접 돌본 실존인물이다.

제비아 역시 ‘거리의 악동’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그들이 그래피티 아티스트나 뮤지션으로 성공하기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슈프림의 첫번째 점원이었던 스케이트 보더 지오 에스테베즈(Gio Estevez)는 현재 유명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됐다. 지금은 중년에 가까운 당시 악동들은 “제비아 덕분에 배를 채우고,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제비아(왼쪽 두번째)는 비행 청소년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의 예술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제비아 역시 왠지 거칠 것 같지만 의외로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언론 인터뷰에도 잘 응하지 않아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공군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일찍이 헤어지면서 제비아는 유년시절 패션잡지에 푹 빠져 지냈고, 주말엔 런던 시내를 돌며 윈도우 쇼핑을 했다. 1983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소호 일대 의류매장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스케이트를 타진 않았지만 보드에 그려진 그림과 보더들의 반항적인 문화를 좋아했다는 그는 결국 ‘스케이트 보더 패션’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뒷골목을 지배하던 슈프림은 이제 ‘주류를 위협하는 비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슈프림 앞엔 종종 ‘스트리트 패션의 샤넬’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남성잡지 GQ는 ‘현존하는 지상 최고의 쿨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라고 극찬했다.

제임스 제비아

하지만 제비아는 “쓸데없이 브랜드를 확장하고 변형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슈프림이 생존하려면 더 ‘쿨’해질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역시 그는 끝까지 ‘마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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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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