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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의 교과서 파동…한국史 교과서 ‘논쟁의 역사’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두고 당국과 교육계, 진보ㆍ보수 진영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倂記) 논란도 ‘활화산’인 가운데 백년대계인 교육을 두고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한 혈투가 ‘제2의 교과서 파동’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10일 교육부는 “현재까지 중등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는 공식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이미 국정화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하고 발표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장 이날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2015 개정교육과정’과 함께 교과서 발행체계(국ㆍ검정 구분)를 고시해야 하는 만큼 늦어도 추석 전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정부가 2~3종 복수의 국정교과서를 발행해 단일 종으로 가르친다는 비판을 완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역사교과서 ‘논쟁의 역사’=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역사가 깊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국사 교과서는 ‘검정제’였지만 1974년 박정희정권 유신체제 하에서 국정화됐다.

이후 1980년대 중반 민주화의 영향으로 근현대사 연구의 학문적 성과가 역사 교과서 서술에 반영되면서 유신시대 국정 교과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4년 이후 근현대사 부분에 있어서 보수-진보 진영의 논쟁이 표출됐고, 결국 학술적 공론 보다는 이념에 따른 ‘정쟁’의 성격으로 변해갔다.

2002년 김대중정권 하에서 지금과 같은 검정체제가 다시 도입됐다. 근현대사 부분이 국사에서 분리되는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엔 기존 국사(국정)와 근현대사(검정)가 ‘한국사’로 통합되면서 검정 체제로 일원화됐다.

2013년엔 뉴라이트(보수) 계열의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부의 최종 검정 통과했다. 역사학계를 통해 수많은 오류가 지적되고 진보 진영에 의해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을 겪은 뒤 결국 2014년 교학사 교과서를 최종 채택한 학교는 전국에 1개교에 불과했다. 일부 학교는 채택 과정에서 항의가 빗발치는 등 큰 진통을 겪었다.

올해 7월 당·정·청(黨政靑) 회동에서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의제로 다뤄졌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미리 배포된 자료집에는 포함시키지 않고, 현장에서 자료를 배포한 뒤 수거할 정도였다.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비율이 극히 미미한 정도에 그치면서 보수 진영이 아예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헤럴드DB

▶찬성하는 보수 진영=보수 성향 학부모들과 학계, 교사 등 각계각층의 보수 단체들이 국정화를 찬성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대부분 현재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돼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념논리를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에 따른 객관적인 내용을 기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율교육학부모연대 측은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편찬자들의 사관(史觀)이 개입된 역사를 배우고 있다”면서 “현재 검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비롯한 역사학계를 진보진영 학자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자유총연맹도 8일 성명을 내고 “반한(反韓) 민중사관으로 무장된 좌편향 역사 교과서가 청소년들을 정신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다“며 ”다양성이란 미명 아래 만들어진 검인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단일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자학의식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역사학계에서는 보수 성향의 교수들조차 “좌편향 교과서 문제와 국정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보수가 영원히 정권을 잡는 게 아니다. 반대 쪽이 집권하면 분명히 다시 만들텐데, 교과서가 이데올로기 세뇌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교육이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이념 대립구도로 비화하는 건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반대하는 교육 현장=교육 현장의 목소리는 반대가 우세하다. 정부와 보수 진영의 국정화 시도가 시대에 역행하는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은 9일 전국의 중고교 사회과 교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7.7%(8188명)가 국정화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은 지난 2일 “정치권의 논의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며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황우여 부총리에게 전달했다.

이들은 “똑같은 역사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2255명 같은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사들은 “교육부는 균형잡힌 교과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진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시키려는 시도”라며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결정한다면 즉각 국정 교과서 폐지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국정화 추진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9일 원로 교수 등을 포함한 역사연구자 1167명도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성명을 냈다.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의 속내는?=교육부장관과 여당 대표는 국정화를 위해 하나로 단결한 모습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거나 “필요하면 국정화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등 이미 수차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시사했다.

집권여당 대표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지난 1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서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히는 등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두 ‘정치인’이 현재까지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맞서는 이유는 결국 청와대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교육계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대북 관계와 전승절 참석 등 외교를 통해 지지율과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부치는 것 같다”며 “만약 진보 진영과 역사학계의 반발 수위가 과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심해지면 그들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결국 진보ㆍ보수 갈등 프레임으로 가면 잃을 게 없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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