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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3편 동시상영중…충무로서 ‘콕’집은 배우 배성우
‘베테랑’ ‘뷰티인사이드’ ‘오피스’출연
배역·비중 불문 미친 존재감 눈길
“연기 좋더라,그한마디 가장 행복”



분량보다는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다작 배우 이경영은 ‘충무로 영화는 이경영이 나온 영화와 안 나온 영화로 나뉜다’는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설(說)을 만들어냈다. 전 연령층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는 감초 배우 오달수는, 지난 해 ‘1억 배우’에 이어 올해는 ‘쌍천만 배우’ 타이틀을 거머쥐며 ‘흥행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신흥 충무로 ‘대세’로 꼽히는 배우는 단연 배성우(43)다. 지금 극장가에선 배성우가 출연한 영화 3편이 나란히 걸린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오피스’가 2주 간격으로 개봉한 결과다. 1관에선 중고차 매매 사기꾼(베테랑)으로 분한 배성우를, 2관에선 교복 입은 모습(뷰티 인사이드)의 배성우를 만날 수 있다. 배역과 비중을 불문하고 그는 어김없이 관객들을 숨죽이게도 하고 웃음이 터지게도 한다.

그럼에도 감질나는 출연 분량이 아쉽다면, 새 영화 ‘오피스’(감독 홍원찬ㆍ제작 영화사 꽃)에서 그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선량하고 성실한 가장인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이 어느 날 자신의 일가족을 죽이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다. 이 끔찍한 비극의 주체가 단순 사이코패스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감을 가지는 건, 오롯이 배성우라는 연기자의 힘이다. 어수룩한 듯 애잔해 보이는 얼굴에서 웃음기만 살짝 걷어내도 금세 다른 사람이 된다.

“회사원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와 시대가 불안하고 힘들다는 걸 모두가 느끼잖아요. 게다가 김 과장은 조직에 속해 있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죠.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아픔, 슬픔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다만,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일으켜야 하니까, 연기할 때 복잡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부분이 까다로웠죠.”


영화의 제목인 ‘오피스’라는 공간은 뿌린만큼 거두고 일한 만큼 인정받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배반하는 곳이다. 김 과장은 정글같은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한결같이 성실한 태도로 제 몫을 해내지만, 그를 바라보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눈치나 요령, 야망이라곤 모르는 듯 보이는 김 과장은 그들 눈에 무능력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배성우가 발 딛고 있는 대중예술을 하는 업계도, 척박한 빌딩 숲과 다를 바 없는 곳이다. ‘배우’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이들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안정적으로 먹고사는 배우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얼굴 없는’ 배우들은 생계 걱정을 내내 달고 살아야 한다. 연기를 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한다. 배성우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지난 날이 있었지만, 숱하게 상처 입으며 생긴 ‘굳은살’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배우들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저도 남들 한두 달치 월급을 연봉으로 받기도 했어요. 최소 100~200명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대에서 5명을 앉혀놓고 연기한 적도 있어요. 상처 안받은 척 ‘으쌰으쌰’하고 무대에 올랐지만 쉽지 않았죠.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정신연령이 낮은 편이라(웃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고, 금세 ‘내일 공연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배성우는 몇 년 전부터 주 활동무대를 영화로 옮겼다. 최근 3년여간, 배성우는 스크린을 누비고 있다. 뒤늦게 발 디딘 영화 현장에서 그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팀이라는 유대감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큰 즐거움을 느꼈다. 최근 비중있는 역할을 맡으면서 보다 입체적인 연기가 가능해진 점도 그를 영화연기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작품이 들어오는대로 가리지 않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한 작품에 쏟을 수 있는 집중력이 분산될 수 밖에 없다. 배성우는 작품에서 좀 더 의미 있고, 보여줄 것이 많은 역할을 위해 작품 편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세거나 웃기거나 튀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그보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에 끌리고 연기할 때도 재미를 느껴요. 그리고 작품에서 제 연기가 맛깔스럽게 나왔을 때, 누군가가 제 연기를 보고 ‘좋더라’고 해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연기라는 게 궁극적으로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잖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 때 상대방이 그걸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즐거운 거죠. 기본적으로 연기하는 게 즐겁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못하지 않았을까요?”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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