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의화 국회의장의 쓴소리…“한국 신화를 만든 패기ㆍ의지 어디로 갔나”
-“중장기 국가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는 대응 불가능”
- 기업도 정부도 정치권ㆍ언론도 책임 떠넘기기 팽배 성토
- 위대한 정치‘꾼’은 없다…참된 정치 모습 보여야
- 19대 국회 일할 마지막 기회, 선공후사 정신 강조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정의화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재조명받고 있다. 여당 출신이면서도 야당은 물론,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 고비 때마다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며 조명을 받았다.

정기국회 개회사를 통해서도 국회를 비롯 한국사회를 향해 자성을 촉구했다. 그는 국회의원의 신뢰가 최하위라고 한탄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했다. 국회를 넘어 한국사회의 개혁도 주문했다.

정 의장은 “새로운 국가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가 미래 의제에 대해서는 여야를 넘어 얼마든지 공감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또 기후변화ㆍ고령화ㆍ남북관계 등 한국사회의 산적한 과제를 언급하며 “중장기적 국가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 모두가 미래를 위한 지혜를 온 힘을 다해 모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정 국회의장 개회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동료 여러분,

지난주에는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우려될 정도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였으나, 남과 북은 마흔 세 시간 동안의 마라톤협상 이후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를 통해 평생 분단의 고통을 품고 살아온 이산가족들이 부모형제를 만날 기회가 열려서 다행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야말로 남북관계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남북 관계를 새로운 무대로 옮겨가야 합니다. 서로 화해하고 협력해서 민족 공동체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한 교류와 협력의 길이 활짝 열려야 합니다. 우리 국회에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당국자회담 등 남북 합의사항들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군사적 긴장 사태에서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포탄이 오가는 위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굳게 믿고 흔들림 없이 일상을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의원 여러분, 오늘은 제337회 국회 정기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시작은 늘 새로운 희망과 포부로 넘쳐야 합니다만, 오늘 우리의 마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울렸던 ‘경보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호는 흔들리며 위태롭게 항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너무 큽니다.

고속성장을 자랑하던 한국경제가 어느새 저성장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OECD 주요국 중에서 우리의 잠재성장률 하락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국가채무는 530조원을, 가계부채는 11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위기의 징후가 뚜렷합니다. 우리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동시에 밀려들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이대로 무너지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누적되어 온 문제들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자영업의 위기는 아예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게 문을 열어도 3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이 절반에 불과합니다.

청년 일자리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입니다. 10%를 넘는 청년실업률은 IMF 위기 이후 최고치입니다. 청년의 활력은 대한민국의 활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갖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회적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상위 10%의 실질 소득은 크게 늘었으나, 하위 60%의 실질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대로 우리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줄어들고 양극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를 흔들고 분열과 정체의 악순환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합니다. 해묵은 지역 갈등은 물론, 계층과 이념 갈등에 이어 이제는 세대 갈등까지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창조적 도전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정부도, 정치권도, 심지어 언론과 시민사회조차 도전과 열정보다는 기득권에 기댄 관성과 책임 떠넘기기가 팽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의 신화를 만들었던 그 개혁 의지와 패기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의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우리가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지혜를 모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를 실천할 용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동료 여러분, 우리 정치가 이 큰 구조적 전환기의 문을 따야 합니다. 우리 국회가 국민들께 응답해야 합니다.

1970년에 100만 명이 태어났던 아이들이 1990년에 70만 명대로 줄어들고 2000년에 60만 명대가 되더니 2005년부터는 40만 명대로 떨어졌습니다. 200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2023년이 되면 모든 게 달라져야 합니다. 45만 명을 병역의무로 충당하는 군대가 해마다 20만 명 남짓 나오는 젊은 남성으로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현재 55만인 대학 입학 정원은 어떻게 채울 것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은 어떻게 충원할 것입니까?

이처럼 인구 문제 하나에서 파생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들은 훨씬 깊고 큽니다. 신성장동력을 찾는 문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문제, 고령화 시대 삶의 질 문제, 남북관계 문제, 동북아 질서 문제 등 중장기적 국가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해오던 대로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대응하다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로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미래를 위한 지혜를 온 힘을 다해 모아내야 합니다. 국회도 진정으로 나라 걱정을 하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려면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국가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눈앞의 일에 대해서는 다툴 일도 많지만 국가 미래 의제에 대해서는 여야를 넘어 얼마든지 공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제가 취임 이후부터 국회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미래전략을 조율하면서 국회의 미래지향적 정책 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국회미래연구원’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회가 ‘생각의 힘’을 키우고 여야가 중요한 국가적 미래 과제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야 의원 여러분, 19대 국회도 어느덧 마지막 정기 국회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의원 여러분들이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19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이나 통과 건수가 18대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 연금법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했던 고비마다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살려 합의를 도출해내었습니다. 작년 말, 무려 12년 만에 헌법이 정한 시한 내에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도 국회 정상화의 한 사례입니다.

준공 이후 40년 만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국민들에게 정면 출입구를 개방하고 잔디광장을 아이들과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드린 것도 국회가 국민과 더 잘 소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활발한 의원외교를 통해 각국 의회와의 협력 체제를 공고히 다진 것 또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의 외교역량을 강화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와 기관 가운데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여전히 최하위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엄격한 잣대로 우리 정치와 국회를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 국회의원들을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 냉정히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국민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우리가 과연 제시했는지,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근원적인 개혁들을 과연 치열한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라도 묵은 숙제가 있다면 이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답답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제 정치개혁특위가 또다시 빈손으로 종료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선거구 획정안 제출시한조차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근원적인 정치개혁은 아예 의제로 오르지 못하는 점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구조 개혁을 위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때문이라면 거기서 바로 국민과 국회가 멀어지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가능합니다. 여야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안을 찾아줄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19대 국회 들어 당론만 따라가는 획일적 의사결정이 더 많아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지울 수 없습니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자율성이 살아나지 못하고 상임위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되고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국회가 운영되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국민을 위한 법을 제대로 만들고 행정부가 법을 잘 집행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혁신이고 국회의 정상화입니다.

이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그 모범을 보여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오늘부터 100일간의 회기가 시작됩니다. 19대 국회가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20대 국회가 힘차게 나아갈 길목을 터주어야 할 정기국회입니다. 참으로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예산안은 헌법에 따라 12월 2일까지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감사, 예산안 심사 등 모든 일정이 정상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100일간의 기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소매를 걷어부치고,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합시다.

존경 받는 정치가(statesman)는 있어도 위대한 정치꾼(politician)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공 후사의 정신으로 참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줍시다. 일하는 국회, 일하는 의원의 본분을 다할 때 여러분의 정치적 미래도 열릴 것입니다.

특히 2016년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려내고 국민들께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과 취약계층을 돌보고 민생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일에도 매진합시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로도 국민안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외교안보역량 강화와 남북간 협력을 뒷받침하는 법안 처리에도 최선을 다합시다.

이번 정기회 회기를 마치는 날, 19대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일 한 번 했다는 자긍심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국민의 평가가 좀 더 따뜻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저 역시 부족한 점은 여러분으로부터 배우고 최선을 다해 여러분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복 이후 70년, 대한민국은 눈부신 성공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앞으로 30년 후, 한 세대 후에는 광복 100주년이 됩니다. 광복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다음 세대에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지 우리 모두 깊게 생각해볼 때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용기 잃지 마시고 올 가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dlc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