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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을 알려주마] ‘한국의 에딘버러’가 되고 싶은 ‘부코페’…가능한 꿈인가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왔어요. 미래의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김준호 페이스북)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ㆍBICF)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개그맨 김준호는 지난 8월 초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찾았다.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코미디 페스티벌로 출발,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부코페’를 ‘한국의 에딘버러’로 성장시키고픈 마음이 엿보였다.

지난달 28일 개막해 31일까지 진행된 ‘부코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역사도 규모도 달라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진제공=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코미디 계에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며 지켜보지만 미흡한 점은 여전히 눈에 띈다. 문화부와 부산시에서 각각 3억원씩 지원받으며 예산은 약 10억원으로 늘었지만 전체적인 운영 부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전문가와 외국인이 관람할 국내 콘텐츠의 부재, 뿔뿔이 흩어진 공연장, 공연자 배려 부족(열악한 공연장 등)은 개선이 시급하다. 축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도시 분위기에선 홍보 부족을 절감하게 된다.

‘부코페’가 꿈꾼다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세계 최대 공연 예술 축제로 올해로 69회째를 맞았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이 도시는 관광객과 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공연 관계자(아티스트, 바이어, 디렉터)로 넘쳐난다. 에딘버러 시민들은 축제를 즐기는 참가자이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는 페스티벌 전문가로 변신한다. 이 기간엔 도시 곳곳에 자리한 교회, 성당, 학교, 가게 등이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며, 시민 전체가 축제에 참여한다. “공연자들이 무대에 오르는 극장은 플랫폼인 동시에 공연자의 프로듀서 역할”(전혜정 KADA 대표)도 겸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아티스트를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관광객들을 스스로 즐기게 하며, 페스티벌로서 하나의 ‘콘텐츠 마켓’을 형성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기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거리공연에 참가한 한국의 스트리트 퍼포머 마용환 씨


지난 한 달간 진행된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 공연팀 'SUSHI TAP SHOW2'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바라보는 업계 관계자들이 지난 1회 당시부터 제기한 문제점은 ‘전문가의 부재’였다.

사실 부산은 명실상부 ‘문화의 도시’다. 부산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국제 매직 페스티벌, 음악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형 개그공연 역시 연 10회 정도 성황리에 진행되며, 소극장 공연도 서울 못지 않게 활성화된 지역이다.

이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데다 다양한 축제가 진행되는 지역을 선정했던 탓인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지난 1회 당시 김준호는 사비를 털어 이 페스티벌을 열었다. 

안타까운 점은 외부인력을 기용하지 않은 채 자기 식구들로 움직이는 페스티벌이 3회째를 맞아 운영의 미숙함을 드러냈다는 데에 있다. 공연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적당한 예산으로 한 명씩만 초빙해도 부산에서의 행사는 자동으로 진행될 수 있다. 스페셜리스트 영입없이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지로 큰 돈을 들여 페스티벌 운영 공부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신생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문가 참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긴밀히 협조하며 영국 런던에서 카다(KADAㆍKorean Artist Development Agency) 크리에이티브 랩을 운영 중인 전혜정 대표는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더불어 전문가와 관객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전문가의 참여로 세계적인 네트워킹으로 기회를 창출하게 되고, 일반 관객의 참여는 소비를 만들어 축제의 재정을 완성시키게 된다. 전문가들의 참여와 충분한 일반 관객 참여가 동시에 가능할때 국제 페스티벌로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 참여’의 중요성은 결국 콘텐츠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이번 부코페의 의미있는 성과 중 하나는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측과의 협조로 심사숙고해 고른 실력파 해외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경성대학교 예노소극장에서 진행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엄빌리컬 브라더스의 공연은 주말동안 성황리에 열렸다. 현지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객들이 직접 찾아와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앞서 진행된 두 번의 페스티벌과는 달리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외국인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국내 콘텐츠는 부족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국내 공연은 철저하게 국내 관객의 입맛에 맞춰져있다. 지난 1, 2회 당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논버벌 퍼포먼스팀 옹알스의 참가가 부코페의 볼거리를 더했으나, 그 외엔 방송 코미디가 장악한 업계 환경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3회 역시 외국인이 관람할 만한 국내 콘텐츠의 부재는 ‘국제’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무색하게 했다.

약 30% 정도가 코미디 공연인 에딘버러 프린지를 비롯해 전 세계 유수 코미디 페스티벌에도 영어로 공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넘쳐난다. 국내에서 진행하는 페스티벌인 만큼 한국어를 사용하는 공연이 많은 것을 두고 무작정 ‘내수용’이라고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일부”라는 것이 해외 페스티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국제 페스티벌답게 방송용 코미디와 논버벌 퍼포먼스가 균형을 맞출 필요성이 제기된다. ‘개그콘서트’(KBS2) 등을 통해 선보인 방송 코미디가 국내 관객 유치를 위한 것이라면 해외 관객도 함께 즐길 만한 논버벌 퍼포먼스의 다양한 구성이 필요하다. 때문에 ‘부코페’에서 올해 처음으로 농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코스켓(‘굿바이, 마이클 조던’)을 제작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다. 그럼에도 결성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코스켓이 큰 무대에 서는 것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스토리텔링과 코미디 부족ㆍ기술력의 향상은 팀 스스로 다듬어야할 숙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코미디는 방송 중심의 공개코미디만 남은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본래 우리 코미디의 요소엔 유랑극단, 서커스 등의 장르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 사라졌다”며 “‘부코페’에 초청된 해외 코미디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서커스, 마임, 아크로바틱을 하며 세계를 누빈다. ‘부코페’를 통해 잃어버린 한국적 코미디가 나오고, 방송 코미디 시장이 공연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1인 미디어로 바뀌고 있는 환경을 활용한 코미디의 발전 방향이 필요”하며 “TV에서 나오는 것만이 코미디가 아니라 외연을 넓혀 ‘남사당패’ 등 다양한 장르를 코미디 안으로 끌어올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옹알스와 같은 또 다른 논버벌 퍼포먼스 팀의 발굴은 국내 코미디언이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의미있는 콘텐츠다. 페스티벌은 단지 며칠 간의 행사를 즐기는 데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콘텐츠 마켓’이 형성되고, 국내의 실력있는 코미디언들이 해외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판로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다. '부코페'가 나아가야할 방향인 셈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최대웅 부집행위원장은 “지금은 공연장도 공연자도 많이 부족하다. 에딘버러처럼 스스로 찾아올 수 있는 페스티벌이 되기 위해 해외 유수 페스티벌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몽트뢰 코미디 페스티벌의 협조로 보다 다양한 해외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일 예정이며, 한국형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장르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콘텐츠의 확보로 공연 코미디를 잘 세워 불균형한 시스템인 한국형 코미디가 두 발로 잘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이번 부코페를 통해 스위스, 호주, 남아공, 캐나다 등 해외 코미디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인사를 초청, 코미디 문화 발전에 대한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얻은 것은 이 축제의 발전방향을 구상할 수 있는 계기였다. 최대웅 부집행위원장은 “몽트뢰, 멜버른 페스티벌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단지 즐기는 페스티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공연팀을 해외에 소개하고, 페스티벌 이후의 공연 문화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부코페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부산=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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