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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방극장은 부가시장? NO!…‘멀티플렉스와 어깨 견준다’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제 맛이지.’ 고소한 팝콘 향 가득한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대형 스크린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놀라는 체험도 특별하다. 그렇다보니 IPTV(인터넷TV)나 VOD 서비스 등은 극장 개봉이 끝난 영화들이 추가로 수익을 내는 부가시장의 개념에 불과했다. 콘텐츠는 극장 화제작을 뒤늦게 관람하려는 수요에 집중됐고,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 반복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극장에서 보기 힘든 성인 콘텐츠 등이 강세를 보였다. 한 마디로 디지털 방송과 같은 플랫폼은 어디까지나 영화관의 대안이 아닌 보조 채널에 불과했다.

최근 디지털 콘텐츠 유통 시장을 살피는 영화 업계의 눈길이 바빠졌다. IPTV 서비스가 출범 6년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극장 티켓 매출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콘텐츠 배급사들은 과거 부가판권 수익 정도를 기대하던 소극적인 태도에서, 새로운 수익시장으로서의 잠재력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제 IPTV와 케이블채널에서 극장 동시 개봉작은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최근엔 아예 극장 개봉을 생략한 디지털 단독·최초 개봉 콘텐츠도 크게 늘었다. 

이제는 안방극장이 멀티플렉스의 대안이 될 만한 풍성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중심엔 극장 개봉 대신 디지털 독점·최초 개봉을 택한 차별화 된 콘텐츠들이 있다. (위부터) 디지털 최초 개봉한 영화 ‘신이 말하는대로’,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인히어런트 바이스’


▶유명 감독·배우 영화도 안방극장 줄줄이…=영화 제작사로 잘 알려진 싸이더스픽쳐스는 흥행성을 갖춘 외화들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배급해왔다. 올 상반기 5편의 외화를 선보였고, 하반기에도 5편을 디지털 최초 개봉 방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할리우드를 벗어나 전 세계의 다양한 최신 영화는 물론, 세계 유수 영화제의 화제작, 국내에서도 팬덤을 구축한 제작진의 작품 등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제작진의 로맨스(‘에시오 트롯’)부터 인기 게임 원작의 SF액션(‘헤일로: 슈퍼솔저)까지 다양하다. 일본 거장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신작(’신이 말하는대로‘)도 싸이더스픽쳐스를 통해 안방극장에 소개됐다.

콘텐츠 판다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중화권 흥행작들을 IPTV, 디지털케이블 최초 개봉관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지난 13일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 곽재용 감독의 중국 진출작 ‘미스 히스테리’를 비롯해, 중국의 ‘수지’로 불리는 바이바이허가 주연을 맡은 ‘성형일기’, ‘첨밀밀’ 진가신 감독의 신작 ‘아메리칸 드림 인 차이나’ 등의 라인업이 마련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 직배사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역시 지난해 12월, KT미디어허브와 손잡고 미국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최초 개봉관’을 올레TV에 론칭했다.

최근 디지털 최초 개봉작들의 면면을 보면, 극장에서 개봉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유명 감독 및 배우들의 작품들도 상당수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지난 2월 선보인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대표적이다.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등을 연출한 젊은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고, 호아킨 피닉스, 리즈 위더스푼, 베네치오 델 토로 등 명배우들이 가세해 호화팀을 자랑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더 위 앤 더 아이’도 극장 대신 디지털 플랫폼으로 직행해 눈길을 끈 경우다.



▶“디지털 최초 개봉, 극장 진입장벽 높은 탓”=애당초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비싼 판권을 사들이는 수입사는 없다. 극장 상영을 포기하고 곧장 안방극장으로 뛰어드는 데엔 그만한 속사정이 있다. 한 주에만 수십 편의 영화들이 쏟아지는 극장가의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은 탓이다.

이한대 싸이더스픽쳐스 대표는 “가장 큰 매출과 수익이 나오는 메인 장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환경이 있다”며 “국내에선 잘 되는 영화에 (스크린)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하다. 그러다보니 날아다니고 싸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 들어온다. 작은 영화는 살 길이 없어지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혹 좋은 작품이 입소문이 나서 상영관을 늘려가는 경우도 있다. 다만, 배급사 입장에선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무리하게 극장 개봉을 추진하는 것은 부담이자 모험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가면 일부 대작들이 상영관을 독식하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나머지를 나눠갖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한 주에도 수십 편의 영화가 개봉하다보니, 개봉 첫 주 성적 만으로 스크린 수가 반토막 나는 일도 허다하다. 입소문이 날 틈조차 없는 셈이다. 극장 개봉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홍보·마케팅 비용을 아껴 디지털 최초 개봉으로 우회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극장 관객 수는 정체, 부가시장 성장 속도는 엄청나”=아직까지는 디지털 플랫폼을 공략한 성과가 수익으로 곧장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국내에선 여전히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고 있고, 디지털 독점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보니 지갑을 여는 일이 아직까지는 낯선 탓이다.

이한대 대표는 “극장에서의 관객 수는 어느 정도 정체돼 있다. 부가시장의 성장 속도는 엄청나다. 중국 부가시장의 규모는 이미 엄청난 수준이고, 미국도 극장보다 두 배 이상 크다”며 “우리나라 시장은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아직은 작지만, 연간 3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극장과 또 다른 시청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이선영 KT 언론홍보팀 과장은 “디지털 최초 개봉한 영화 가운데 잘 된 작품은 극장에서 50~60만 관객을 모은 영화가 부가수익 시장에서 거둔 수익에 상응하는 수익을 거두기도 한다”며 “영화관에서 개봉을 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드는데 인터넷TV 등을 통해서 개봉하면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고도 안정적인 수익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CP(Content Provider)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 측에서도 유명한 콘텐츠를 적정 가격에 들여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보니, CP와 플랫폼 서로 윈윈(win-win)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부가시장의 성장이 고무적인 것은 극장 개봉이 어려운 다양한 영화들의 대안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관객 입장에서도 극장 개봉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음성적인 경로를 통하지 않고서도 좋은 화질과 자막으로 손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극장 나들이가 쉽지 않은 관객층(육아 중인 주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 등)에게도 영화 관람의 문턱을 낮춰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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