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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복잡한 선거제, 알고 보면 더 복잡하다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선거제도가 화두입니다. 의원정수 논란부터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 등 알쏭달쏭한 용어가 쏟아집니다. 서로 정답이라 주장합니다. 어떤 말이 맞는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어떤 선거제도라도 완벽할 순 없습니다.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장이 갈립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부각하니 그렇습니다. 선거는 국민의 몫입니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민주주의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한 ‘성장통’입니다. 



어렵고 복잡하지만, 관심을 둬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권의 주장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거제도의 장단점을 국민이 객관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어떤 역할인지, 어떤 역할이 더 중요한지부터 선거제도는 시작됩니다. 의원은 선거구민의 대리전달자라는 개념, 즉 ‘파견인’이란 의견과 의원은 선거구민의 여론보다는 독립된 판단을 가진 ‘수탁자’라는 개념으로 나뉩니다. 



파견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의원은 최우선으로 선거구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합니다. 지역구 의원이 이 개념입니다. ‘수탁자’는 지역의 이익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의회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비례대표가 이에 해당됩니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브리스톨 선거구민이 브리스톨 대표를 선출하지만, 그 순간 그 대표는 브리스톨 의원이 아닌 영국 의회의 의원이 돼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정치인은 지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도 갖춰야 한다는 말이죠.

정치권에선 지역구가 중요하다, 비례대표가 중요하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치인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그 가치관에서부터 나뉘는 셈입니다. 정치인은 어떤 존재가 돼야 할까요?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일까요,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민하는 역할일까요? 여기에서부터 선거제도에 대한 고민은 시작됩니다.

선거제도는 우선 후보자 선정 과정부터 다양한 방식이 존재합니다. 최근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이에 해당됩니다. 크게는 당원이 아닌 대중 참여를 열어두는 프라이머리, 당원만 참여하는 정당 프라이머리, 지역선거구의 당원조직이 후보를 선정하는 지구당 중심형 등이 있습니다.

프라이머리는 최근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와 클로즈드 프라이머리, 즉 개방형과 폐쇄형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개방형은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폐쇄형은 정당 지지자 등 일정한 제한을 두는 제도이죠. 오픈 라이머리는 주로 미국 정당이 채택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보면 보편적인 제도라 볼 순 없습니다. 장점은 중앙당의 개입이 차단된다는 점입니다. 공천권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도 해소될 수 있고, 국민 모두에게 개방된 만큼 관심도 높습니다.

역으로 정당정치에 역행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인기투표로 귀결되고 정치적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정당에 소속감이 떨어지니 장기적으론 정당정치 대신 무당(無黨)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죠. 정당 프라이머리, 지구당 중심형은 오픈 프라이머리와 장단점이 뒤바뀝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살펴보려면 우선 비례대표제, 나아가 현재 한국 선거의 골격을 이루는 1위 대표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위 대표제는 초등학교 반장선거 때부터 익숙한, 한국에선 ‘선거 = 1위 대표제’라 여겨질 만큼 친숙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볼 때 1위 대표제는 그리 널리 활용되는 선거제도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1위 대표제의 단점 때문입니다. 단순하며 쉽고, 지역 대표성을 보장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승자 독식으로 사표(死票)가 많다는 건 1위 대표제의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국민이 뽑았다는 근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의미입니다.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구를 구성하는 게리맨더링에 취약하고 여성이나 소수인권 등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1위 대표제 단점의 대안으로 한국에 도입된 제도가 비례대표제입니다. 국가 단위로는 1899년 벨기에가 처음 도입됐습니다. 그 뒤로 대다수 유럽 국가는 20세기 초 비례대표제로 선거 체제를 전환합니다.

비례대표제는 오랜 역사만큼 그 유형도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한국이 채택한 방식은 폐쇄형 명부제입니다. 정당이 입후보자를 정하고, 유권자는 정당에만 투표하는 형태입니다.

폐쇄형 명부제는 정당정치를 강화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후보자 명부를 정당이 작성하기 때문에 정당의 리더십이 중요하죠. 여성이나 소수자 등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인을 양성하기에도 좋습니다. 현 정치권에서 비레대표제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역으로 상명하복의 조직체계가 구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 공천비리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이유이죠. 대안으로 제시되는 안이 개방형 명부제입니다. 정당만 투표하는 게 아니라 후보자까지 선택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최근 야당이 주장하고 나선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불립니다. 지역구 의원과 정당 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의석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정당투표입니다.

권역별로 의석 수를 배분한 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합니다. 서울 지역 의석 수가 60석이고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이 50%였다면, 새누리당은 서울 지역에서 30석을 배분받게 되고, 새누리당이 지역구 의원 당선자가 20명이라면 새누리당은 30석에서 20석을 제외한 10석의 비례대표 의원을 보유하게 됩니다.

독일은 ‘초과의석’이란 개념도 도입됐습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배분하다보면, 정당에 따른 배분 의석수보다 지역구 선거로 뽑힌 의원이 더 많은 경우가 나옵니다. 정당 지지도는 떨어지지만, 후보자 경쟁력이 높은 경우가 되겠죠. 정당 득표율에 따라 10석을 받게 되는 정당인데 지역구 투표에서 선전해 이미 12석의 의원이 당선돼 있다면, 이 정당은 10석이 아닌 12석을 갖게 되는 식입니다. 이런 이유로 선거마다 의석 수가 불가피하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성, 즉 국민의 의사가 얼마나 제대로 반영되는지 따져볼 때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1인 대표제도 반영하고 있는 혼합형이고, 기존 투표방식과 동일하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편에 따른 충격도 적은 편이죠.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를 유도하다 보니 연립정부 구성이 늘어나는 현상도 벌어집니다. 부정적인 견해는 이를 정치적 불안정으로, 긍정적인 견해는 토론과 타협 문화 확산으로 보는 등 시각은 엇갈립니다.

그럼 선거는 1인 대표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외엔 대안이 없을까요? 선거제도는 마치 양파처럼 알면 알수록 또 다른 대안이 쏟아집니다. 일본은 석패율이란 제도가 특징입니다. 석패율은 떨어진 후보들이 당선자를 상대로 ‘얼마나 안타깝게’ 떨어졌는지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낙선자의 득표수가 얼마나 당선자 득표수에 근접했는지 백분율로 나타내는 것이죠. 비례대표 정당명부에서 석패율을 반영해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단기이양식도 있습니다. 당선되지 못한 표, 사표를 투표자의 선호도에 따라 ’이양’하는 방식입니다. 투표용지부터 다릅니다. 1곳에 투표하는 게 아니라 후보별로 내 선호도를 투표합니다. A당ㆍC당ㆍB당을 각각 1순위, 2순위, 3순위로 표시하는 식입니다. 1순위로 꼽은 A당이 낙선해 내 투표가 사표화 되면 이 표는 2순위인 C당에 반영됩니다. 모든 후보자가 투표용지에 나오고 유권자는 모든 선호도를 표시해야 합니다.

단기이양식은 투표자의 선호도를 최대한 반영하고 사표조차 되살린다는 점에서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는 제도입니다. 단점은 제도가 복잡하고 유권자도 어려워한다는 점이죠. 모든 후보의 선호도를 매기는 게 쉬운 작업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선거구가 아닌 다수를 뽑는 다석 선거구라면 한층 문제는 복잡합니다. 과거 오스트레일리아에선 99명의 후보자가 적힌 1m가 넘는 투표용지가 나오는 일도 벌어졌다고 하네요.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이상적인 선거제도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도입한 국가가 많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현실적 문제 때문입니다.

익숙하면 편한 법입니다. 하지만, 익숙하기만 하다 보면 무뎌질 수도 있습니다. 시대는 끊임없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제도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선거개혁의 첫단추는 정치권의 공방이 아닌, 정권의 의지가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관심일 것입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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