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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유족들도 무대 위에…혜화동1번지 ‘세월호’ 주제로 릴레이 공연
남들은 바캉스를 떠나는 계절. 연극인 100여명은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연극 8편과 영화 1편을 선보인다. 이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고,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무겁고 신중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도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세월호’는 연출가 동인(同人) ‘혜화동1번지’ 6기가 주최한다. 혜화동1번지 6기 중에서는 신재훈 연출과 구자혜 연출이 신작 두 편을 선보이고, 송경화 연출은 짧은 단편 영화를 제작한다. ‘게공선’ 등 나머지 연극 여섯 편은 초청작이다.

릴레이 공연 ‘세월호’ 참가작인 연극 ‘게공선’ 리허설 중 한장면.[사진제공=극단 동]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구자혜 연출은 “누군가의 죽음을 다룬 ‘세월호’는 고된 주제라 부담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 연출을 비롯 30대 젊은 연출가 집단은 막중한 부담을 피하지 않았다. 기획초청공연의 제목부터 돌직구다. 어떤 수식어도 없이 그저 ‘세월호’다.

이번 작업에 참여하는 연출가들은 처음 모인 날부터 난상토론을 벌였다. 나라 전체를 뒤흔든 세월호 사건을 다루면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품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함께 고민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네 차례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 5월말에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저자 한강을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7월초에는 안산 단원고, 416기억저장소, 합동분향소를 찾아갔다.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사진제공=혜화동1번지 6기동인]

“책이나 기사, 광화문, 팽목항에서 보는 이미지보다 누군가에게 일상의 공간이었지만 그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보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단원고에서 그 빈자리를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돌아왔죠. 세월호 유족 두 분을 만났는데 저희한테 밝은 공연을 해달라고 주문하시더라고요. 그게 더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구 연출은 기존에 나와있는 희곡 중에 세월호와 관련된 대사들을 모아 ‘오늘의 4월 16일, 2015.8’ 대본을 만들었다. 세월호 희생자 예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진은영 시인의 시(詩)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적다’와 세월호 희생자 신호성군의 시 ‘나무’도 인용한다. 이 작품은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해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연습 때 배우 한명이 안 와서 제가 대신 대사를 읽었어요. ‘다 죽었어요, 다’라는 대사를 읽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요즘도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른 연출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첫번째 공연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의 김민정 연출은 당초 배우들과 세월호 유족들이 함께 무대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하지만 김 연출은 “이래도 될까”라는 고민 끝에 한 차례 철회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유족들이었다. 지난 17일 안산 416기억저장소에서 이 작품을 미리 관람한 일부 유족들은 무대에 직접 오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자혜 연출[사진제공=혜화동1번지 6기동인]

혜화동1번지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모금 운동도 진행 중이다.

“제작비 마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저희가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연극을 하는 사람이든 안 하는 사람이든 같이 공연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입니다”

국내 유일의 연출가 동인인 혜화동1번지는 그간 이윤택, 김광보, 양정웅 등 스타 연출가들을 배출해왔다. 새로운 멤버는 이전 기수들이 만장일치로 뽑는다.

올해 구 연출을 포함 6기가 발탁됐다. 구 연출은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모한 신작 희곡 페스티벌에서 ‘먼지섬’으로 당선되며 연극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국립극단에서 ‘3월의 눈’ 등 굵직한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국립극단에 있을 때 유명한 연출들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며 저도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연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도 안되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었죠. 연극은 관습적으로 이래야 한다는 것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 2012년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구 연출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에 선발돼 연극 ‘모래의 여자’를 연출하기도 했다. 불합리한 세계에 저항하던 한 인간을 다룬 작품이다.

“근거없는 희망을 내세우며 세상은 아름답다고 미화하는 연극을 보면 저는 오히려 침체되요. 힘들어도 불편함을 직시하게 하는 연극이 오히려 위로가 되죠. 근거없는 희망보다 ‘세월호’처럼 불편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앞으로 계속해서 세월호 관련 공연들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세월호’를 주제로 한 9편의 작품은 오는 8월 5일부터 30일까지 혜화동1번지 극장에서 공연한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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