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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에 백화점 가는 남자]“혼자 노는게 왜 창피합니까?”…百(백화점)돌이의 당당한 선언
[헤럴드경제=이태형ㆍ손미정 기자]오전 11시에 기상, 곧바로 백화점행(行), 12시30분 식품관에서 식사, 오후 내내 쇼핑, 오후 3시30분 바버샵 방문, 휴식과 커피, 그리고 6시30분 귀가….

김모(36) 씨의 주말 일과다. 타임테이블은 거의 하루종일 백화점 안에 있다. 그런데 김모 씨는 여성이 아니다, 남성이다.

남자들이 달라졌다. 여자친구, 아내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백화점을 가야했던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백화점에 들어서는 순간 앉을 곳을 찾기 바빴던 그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백화점으로 향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비단 남성 매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럴듯한 옷에 맞는 외모관리를 위해 여성들로 북적이는 화장품 매장에서 제품을 테스트하고, 식품관에서는 직접 만들어먹을 저녁 찬거리를 산다.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백화점의 곳곳을 누비는 남자들은 더이상 ‘창피하지 않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남성고객 수는 지난 5년간 매년 꾸준히 10% 증가 중이다. 전체 고객 중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도 2009년 25%에서 2014년 28%로 5년새 3% 포인트 증가했다. 방문하는 남성고객 수가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전체 매출 중 남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8.1%에서 2015년(6월까지) 32.9%로 증가, 백화점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부상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남성고객이 쇼핑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男, 백화점에 눈 뜨다=‘쇼핑’이라는 키워드는 남성보다 여성들과 더 잘 어울린다. 서슴없이 남성들이 백화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처럼, 쇼핑은 이제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말에도 ‘방콕’ 대신 백화점을 택하는 주백남(주말에 백화점 가는 남자), 백돌이(백화점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남자)의 증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화된 것이 아닌, 자기 표현의 공간으로서 백화점이 남성에게 갖는 의미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의 여성화라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로서 백화점이 갖는 의미가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쇼핑공간이 점차 ‘복합쇼핑몰(mall)화’된 것도 백화점에 대한 남성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 했다. 송 교수는 “쇼핑을 하면서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다양한 문화생활이 가능하게 되면서 남성들이 백화점에 들르는 기회가 많아지게 된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1인 가구의 증가 역시 남성들을 백화점으로 이끈 이유 중 하나다. 4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인 시대, 본인을 위한 소비의 폭이 커진 싱글남성들을 중심으로 본인을 위한 ‘가치소비’가 실현되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인 셈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1인 가구 증가의 이유로 성인남녀들은 ‘결혼 가치의 변화(65.9%ㆍ중복응답)’를 꼽았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면서 남성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온전히 본인을 위해 소비하는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루밍족(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 메트로섹슈얼(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 등 꾸밀 줄 아는 남성들의 증가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세대별로 백화점을 향하는 남성들의 사정에는 차이가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훨씬 유행에 민감한 소비세대로, 소비성향이 크고 유행 지향적이기 때문에 백화점을 더 찾는 경향이 있다”며 “외모 지상주의, 물질주의가 보편화되면서 40대 역시 사회적 관계형성을 위해 유행을 따르고 대중적이어야 할 필요성이 큰 세대”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남성고객이 쇼핑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남성고객을 모십니다=백화점을 찾는 남성고객 증가는 자연스럽게 백화점 내 남성만을 공간의 입지를 넓혔다. 까다로워진 남성의 입맛에 맞는 브랜드와 상품을 구성하고 남성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도 마련했다.

성현철(35) 씨가 주말에 롯데백화점을 찾는 것은 그래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6월 본점 남성매장에 이발과 면도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버샵’과 패션 매장 ‘클럽모나코’를 결합한 맨즈샵을 선보였다. 바버샵에서는 남성들만을 위한 맞춤 스타일 상담과 이발, 영국 정통 습식면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약 1시간 가량의 서비스로 하루 최대 7명의 손님까지 받을 수 있는 이곳 바버샵은 오픈 한달이 지난 지금 늘 예약이 가득찰 정도로 인기다.

최근에는 남성들의 다양한 관심거리를 한 데 모은 ‘멘즈 아지트(Men’s AGIT)‘ 편집 매장을 오픈, 남자들의 취향을 본격적으로 저격하고 나섰다. 멘즈 아지트에서는 아이엔드 카메라를 비롯한 관련 악세서리, 피규어, 드론, RC카 등의 남성 취미 관련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패션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 2011년 강남점에 첫 남성전문관을 열고 이어 2013년에는 센텀시티점, 2014년 말에는 본점에 남성전문관을 새롭게 만들었다. ‘프라이빗하고 럭셔리한 쇼핑을 즐기고 싶어하는 남성‘을 타깃으로 여성 못지않게 자신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 하는 3050대 남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브랜드, 차세대 브랜드 등을 선별했고, 아이웨어나 오디오, 슈케어(shoe care) 등 남성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상품 구성에도 신경 썼다. 남성전문관 리뉴얼 오픈 100일 후, 신세계 본점 남성층 연령별 매출 비중은 30대가 리뉴얼 전보다 약 7%, 40대가 3.4% 가량 증가했다. 신세계 측은 “본점 남성전문관을 찾는 소비층이 자기 주도적인 소비를 는 30대와 40대 초반의 남성들로 대폭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balme@heraldcorp.com

▶어느 주백남의 주말 일상

11:00 기상/백화점行

11:30 백화점 도착, 평소 즐겨 찾는 남성 브랜드들을 둘러보며 신상품 아이쇼핑

12:30 백화점 식품관 푸드코트에서 점심

13:00 명품 매장 아이쇼핑. 인터넷을 통해 본 ‘M’ 브랜드의 명함지갑 구입

15:00 스포츠 매장에서 휴가지에서 입을 비치팬츠와 래쉬가드 구입

15:30 바버샵 방문. 이발 및 쉐이빙 서비스 받음

16:30 백화점 내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휴식

17:00 다시 남성복 매장 방문. 오전에 눈 여겨뒀던 셔츠와 넥타이 구입. 같은층 남성 취미용품 매장서 새로나온 드론, RC카 구경

18:00 사은 상품권 수령, 지하 1층 식품 매장에서 신선식품, 음료 등 구입

1830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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