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징비록’을 보는 답답함…‘그래도 국가는 있다’
KBS 대하사극 ‘징비록’이 총 50회중 2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징비록’은 한마디로 분노 유발 드라마이다. 40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보고 있으면 화가 솟구쳐 오른다. 왜군이 쳐들어왔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왕(선조)에 화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신하들에 화난다.

임진왜란이라는 적의 침입을 한 차례 당하고 다시 공격을 받아도(정유재란) 별로 변한 게 없다. 원균이 전사한 칠전량 해전 등 조선이 크게 패했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이순신에게만 기대야 하는가. 
국가 위기상황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책임지는 공직자가 필요하다. ‘징비록’의 류성룡(김상중)을 통해 국난을 겪으면서 책임질 줄 아는 공직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이처럼 ‘징비록’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징비록’은 시청자도 그런 답답함을 느끼고 화를 내면서 어떻게 해야될지를 가다듬는 드라마다. 그나마 국난을 겪으면서 책임질 줄 아는 공직자의 모습을 류성룡(김상중)과 이순신(김석훈)에게서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유인작전에 말리지 않으려고, 왜적을공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절해 처형될 운명에 처했을때, 류성룡이 이순신의 구명에 나서 백의종군하게 한 것은 드라마와 실제 역사가 차이가 있지만, 류성룡은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

KBS에서 주로 대하사극을 기획하는 김형일 CP로부터 KBS 대하사극의 기획과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김 CP에 따르면 KBS의 대하 사극의 포인트는 ‘국가’다. 로마제국이 멸망해가는 역사를 치밀하게 고찰한 저작물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이듯, KBS의 대하 사극은 조선의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조선의 흥망성쇠를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만드는 과정을 보기위해 제작한 ‘정도전‘이었다. 두번째는 그후 200년이 지난 시점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에 처한 조선을 어떻게 끌고가는지를 류성룡 선생과 ‘콤플렉스 덩어리’ 선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징비록’이다.

정도전은 나라를 열고 통치이념과 제도를 만들어가는 혁명가였다.그래서 시원시원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류성룡은 답답하다. 당파싸움을 일삼는 기득권 세력에 묶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선조를 모시고 위기를 극복하려니 얼마나 답답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있다. 류성룡은 윤리 교과서 같은 면이 있지만 실용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의도만 봐도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세번째는 내년에 방송될 ‘정약용’이다. 병자호란 등으로 국가 정체성이 무너지고 이어 들어온 서양문물과 서학, 이런 국가 전환기에 처해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는 정약용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 위기 상황에서 조선 사회는 보수적으로 해결하자는 쪽과,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전통을 부정하는 서학도 있었다. 정약용과 정조는 이 사이에서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실용적으로 해결하자는 개혁가로 볼 수 있겠다.

KBS 대하사극은 제작비 등의 여건상 1년에 50부작 기준 1편이 제작된다. 6개월간 방송되고, 6개월은 준비기간이다. 하지만 ‘징비록’과 ‘정약용’ 사이에 대하(大河)보다는 짧은 특별기획물인 ‘장영실’(24부작)을 하나 더 기획했다. 송일국이 출연할 것으로 보이지만 예능때문에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장영실’은 오는 10월 방송될 예정인데, 조금 더 늦춰질 수도 있다.

노비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은 측우기, 자격루, 앙부일구를 발명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훌륭한 발명품인지는 이미 수많은 교양, 다큐물에서 보여주었다.

사극 ‘장영실’에서는 장영실과 성리학을 대립격으로 보여준다. 조선이 관념에 꽁꽁 묶여있는 유교, 성리학 사회였지만, 과학하는 전통도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리학과 과학은 반대말은 아니지만 당시 상황과 실정으로 볼때 대척점에 위치한 부분이 있었다. 성리학은 사회지배적인 이념이자 정답이 있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접목시킨 성리학은 절차탁마로 심오한 경지까지 갈 수 있지만, ‘답정너’(답이 정해져 있음) 학문이다.

과학은 ‘답정너’ 학문이 아니다. 사물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이치를 생각하며, 그 현상에서 유추해 새로운 원리와 사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해와 달을 움직임을 살피는 천문학과 과학의 원리들을 적용한 기계공학이 발전한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낸다.

‘장영실’은 성리학 사회에서 걸출한 리더 세종이 과학하는 사람을 키워내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렇게 과학하는 전통이 현재 우리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경제발전에는 조선시대의 과학하는 전통이 뒷받침돼 있다. 

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