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건희에게 반도체, 이재용에겐 바이오 있다
[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1974년 12월.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과 경영진의 만류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TV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처지에 첨단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무모하다면서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3년안에 망한다는 설도 파다했다. 선진국과의 엄청난 기술격차, 막대한 투자금, 고급기술인력 확보, 공장건설 등 모든 것이 난제였다.

이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친인 선대회장을 설득해 1983년 2월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이 회장의 결단은 한국 산업의 틀을 바꿔놓았다. 

백지에서 시작한 삼성 반도체 사업에는 늘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1983년 64K 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후 1992년에는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로 발돋움했다.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에서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사업이 삼성그룹의 근간을 이룬데에는 이 회장의 과감한 투자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의 ‘반도체 신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에서는 ‘바이오 신화’로 이어질 조짐이다. 이회장에게 반도체가 있었다면 이부회장에게 바이오가 있다는 설명이다. 바이오산업은 진입장벽이 높고 막대한 투자금을 잘못 투입했다간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반도체산업과 닮았다. 부자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하는 상황에서 각각 주목한 산업이란 점도 유사하다.

바이오는 이 부회장이 직접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사업이다. 5대 신수종사업 중에서 가장 공들이는 사업군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바이오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3월 열린 보아오포럼에선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삼성은 정보기술과 바이오, 의료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13년 4월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이 삼성그룹을 방문했을 당시 이 부회장은 직접 삼성의 바이오 사업 역량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2014년 2월, 삼성과 머크는 바이오시밀러 공동 개발 및 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회장의 전략은 계열사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계열사별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메디슨 등이 각각 의약품 생산과 개발, 의료기기를 맡고 있다. 지난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결정은 바이오사업이 탄력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은 그룹 지주사로 떠오른 통합삼성물산을 통해 바이오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까지 바이오의약품 분야 세계 1위 의약품위탁생산업체(CMO)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이 회사는 글로벌 제약사인 BMS·로슈 등과 바이오의약품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제2공장이 가동하는 내년에는 생산능력이 18만ℓ로 확대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바이오시밀러(생물동등의약품) 세계 1위에 오른다는 포부다. 최근 자가면역질환 치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한 이 회사는 내년 상반기 미국 나스닥에 상장될 예정이다. 상장이 마무리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67개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 증시에 직접 상장한 곳이 된다.

재계는 바이오 사업이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글로벌시장을 석권한 삼성이 바이오사업 투자를 위한 전략적인 행보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세계 바이오헬스시장도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전세계 바이오헬스 산업 시장이 연평균 5.3%씩 성장해 2013년 133조원에서 2020년 19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권도경기자/ k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