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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유승민 귀가표정]유난히 쓸쓸한 뒷모습…한손엔 가족에 줄 빵봉지가
[헤럴드경제=장필수 기자]‘살아있는 권력’에 밉보여 정치적 진퇴(進退)조차 동료 의원의 손에 맡기게 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통상 매일 오후 9시께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자택으로 귀가한다고 아파트 경비원이 귀띔해줬으나, 기다림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8일 오전 12시 40분께, 유 원내대표가 나타났다. 그의 가족들이 집안의 불을 끈지 한 시간 가량 흐른 뒤였다. 유 원내대표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오전 김무성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모인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의 거취를 논의할 의원총회를 소집키로 결정했고, 유 원내대표는 “의총의 결론을 따르기로 했다”고 ‘결단’을 내린 힘든 하루의 끝이어서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새벽 귀갓길에 기자와 만나 짧은 대화를 한 뒤 자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그의 오른 손엔 빵봉지가 들려 있었다. 장필수 기자/essential@heraldcorp.com

유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김무성 대표와 면담에선 “의총에서 내 목을 쳐달라”고 말한 걸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오전 열린 의총에서 결론 날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기자와의 짧은 대화에서 전해졌다. 그의 손엔 가족에게 줄 빵봉지가 들려 있었다.

-지금까지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계시다 왔나.

▶네.

-어떤 것 때문에(귀가가 늦었나). 오래 생각한 것 같은데.

▶그만합시다.

-5시간을 기다렸다. 한마디만 해달라.

▶드릴 말씀 없습니다.

-의원총회 참석 안 한다고 했는데 왜 인가.

▶우리 당헌당규에 참석 안 하도록 돼 있습니다.

-따로 입장 발표를 하나.

▶그건 의총결과를 보고(결정하겠다).

-(입장 발표)준비는 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요.

-평소보다 퇴근이 늦었는데.

▶네, 늦었어요.

-따로 성명서를 내나.

▶예, 가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같은 대화를 한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7시간쯤 뒤 출근길에 다시 기자와 만났다. 이번엔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둘러싸였다. “오늘 결론이 나면 입장 발표할 예정인가”, “대표님 의중을 궁금해 하는 동료 의원도 많은데 직접 의중을 밝힌 적 없지 않나”, “(입장 발표) 원고는 쓰셨나” 등의 질문이 빗발쳤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표정 변화는 읽히지 않았다. 그의 차는 여의도 국회로 향했다.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유승민의 시간’은 13일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거론한 때부터다. 그는 박 대통령의 진노(瞋怒) 이틑날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대통령도 저희에게 마음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바란다”고 사과했지만, 상황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당 유력 정치인을 둘러싼 거취 논란과 뒤이은 권력 다툼은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essenti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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