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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심야식당’, 혹독한 신고식…리메이크 드라마의 해법은?
김성진=좋은 노래는 골랐는데 가창력도, 연주도 안따라준다 ★

고승희=정서도 디테일도 잡지 못한 혹독한 신고식…좀 기다려보죠 ★★☆

이혜미=원작의 미덕도 한국화 차별성도 실종된 맹탕 ★★

정진영=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하나…미스 홍의 찰진 먹방 ★★☆


한낮을 방황하던 고단한 걸음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어린시절의 보물을 발견한듯 발길이 머무는 곳. 이 곳은 매일밤 12시에야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다. ‘심야식당’의 밤엔 차별이 없다. 야쿠자와 게이바 마담, 스트립 댄서와 소녀가장은 잊혀진 여배우와 어깨를 비비며 저마다의 기억을 식사한다. 시간이 멈춘 공간은 조각난 관계를 잇는 톱니바퀴이며, 소박한 상차림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진 치유의 레시피다.

2년 전부터 기획됐던 SBS ‘심야식당’(극본 최대웅 홍윤희, 연출 황인뢰) 한국판이 지난 4일 문을 열었다. 20부작 중 고작 2회분을 내보낸 드라마의 반응을 종합하면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제작 단계부터 “‘심야식당’은 건드리지 말라”는 원작 마니아들의 아우성이 솟구쳤다.

‘심야식당’의 제작사인 (주)바람이분다의 백충화 본부장은 “비판도 칭찬도 원작팬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인뢰 감독 역시 “크게 보면 같은 배에 탄 사람들이다.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게끔 더 잘 하자며 배우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원작 리메이크의 숙명, ‘잘해봐야 본전’=지난 4일밤 12시 10분부터 2회 연속 방영된 한국판 ‘심야식당’은 4.0%, 3.6%(닐슨코리아 집계, 수도권 기준)의 믿기 힘든 시청률을 써냈다. ‘패키지 판매’(인기 프로그램과 엮어서 광고를 파는 것)라는 ‘묘수’로 7월 한달간의 광고도 다 팔아치웠다. 8회분 광고 완판이다. 첫 끗발이 좋으니 내부 반응은 긍정적인데,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는 폭격을 맞고 있다. ‘잘해봐야 본전’인 원작 리메이크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2005년 ‘봄날’ 이후 브라운관을 찾은 일본드라마(이하 일드)는 적지 않았다. “성공한 원작에 대한 안정성”(박상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국장)을 담보했기에 “창작물보다 위험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는 수많은 드라마제작사를 움직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안방을 찾은 일드 리메이크 작은 10편을 훌쩍 넘긴다. 성공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2007년 ‘하얀거탑’, 2009년 ‘꽃보다 남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잠잠했던 일드 리메이크는 2013년 붐이 일었다. 지상파 방송3사가 뛰어든 전쟁의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정서의 벽’을 넘지 못한 두 편(MBC ‘여왕의 교실’, SBS ‘수상한 가정부’)과 현지화로 호평받은 두 편(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KBS2 ‘직장의 신’)으로 운명이 갈렸다. 지난해엔 끝내 원작(노다메 칸타빌레)을 넘지 못한 ‘희대의 졸작’인 ‘내일도 칸타빌레’(KBS2)가 나왔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일드 리메이크의 성공 노하우에선 ‘심야식당’ 한국판을 향한 비판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방영 당시의 시의성과 보편성”, “몰입도 높은 캐릭터”가 리메이크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하얀거탑ㆍ김명민 주연)을 보여주는 보편성, 비정규직 문제로 시름하는 사회상을 담은 시의성(직장의 신ㆍ김혜수 주연)이다. 특히 “일본드라마의 경우 에피소드와 상황의 구성보다는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드라마를 끌고가는 전개가 일반적인데, 이들 캐릭터의 한국적 각색이 이질적인 정서를 허무는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주 국장은 “리메이크 드라마는 언제나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과 ‘한국정서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두 가지 이슈에 직면해왔으나, 사실 둘 다 반영할 수가 없다”는 것이 ‘딜레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서에 맞게 바꾸든, 원작에 충실하든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의 재미”라며 “우리가 사는 시대를 얼마나 잘 반영해서 재미있고 공감가는 스토리를 끌어내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상처투성이 ‘심야식당’, 괜찮아요?=원작의 국적을 떠나 리메이크 드라마를 연출하는 PD와 작가들은 “창작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재창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어려운 재창작의 세계를 두드린 ‘심야식당’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원작 만화(아베 야로)는 국내에서만 43만부를 팔아치웠고, 드라마로는 세 시즌까지 선보였으며, 영화로도 제작돼 8일 기준 개봉 20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1만여명을 기록한 ‘괴물 원작’이다.

시청자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한국화 과정을 거쳐 선정한 음식(가래떡과 김, 메밀전)이 일상적이지 않다’, ‘요리장면이 적어 음식을 통한 에피소드의 감동이 살지 않는다’, ‘식야식당의 세트가 너무 새 것 같다’, ‘소박한 밥상을 파는 식당에 고가의 평면TV와 오디오가 서민적이지 않다’고 꼬집는다. ‘디테일 부족’이 들통난 셈이다. 거기에 위너 남태현, 강서연의 연기력 논란과 주조연 배우들의 ‘캐릭터 부조화’는 화룡정점을 찍었다. “한국의 보편타당한 정서를 감안”해 게이바 마담과 스트립 댄서가 빠진 부분은 기어이 ‘다양성 존중’ 논란으로 점화됐다. 무엇 하나 논란이 아닌게 없다.

“약간의 문제만 비쳐도 부정적 평가가 많을 수밖에 없는”(윤석진 교수) 인기 원작을 품은 작품일지라도, 원작팬의 원성에도 이유는 있다. “봐야하는 이야기”(윤석진 교수)와 “기대했던 이야기”(박상주 국장)가 보이지 않으니 불만을 찾게된다는 지적이다.

원작 ‘심야식당’의 매력은 “단순한 사랑이나 배신, 복수 등의 큰 흐름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 일상의 소소함을 주목하고 보듬어주며”(씨네프 편성팀 이민규), “외로운 사람들의 인간적인 고독을 다루며 치유하는 과정”(윤석진 교수)을 통해 “인생의 맛을 보여준다”(홍윤희 작가)는 점이다.

2회분이 방영된 현재 ‘심야식당’에 쏟아지는 비판엔 “우리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에피소드를 풀지 못했다”(박상주 국장)는 점과 더불어 “중심을 잡고 끌고가야할 캐릭터들이 자리잡지 않았다”(윤석진 교수)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또한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의 콘셉트인 1인 식당의 경우, 혼자 밥 먹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식문화와의 정서적 차이를 캐릭터의 조화를 통해 극복하는 것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판 ‘심야식당’의 실험…“중편영화 20편 만든다”=공교롭게도 오는 18일 오후 11시부터 케이블 영화채널 씨네프에서 일본드라마 ‘심야식당’ 시즌1의 첫 회가 방송된다. 전 시즌의 편성으로, 한국판보다 1시간 빨리 문을 연다. 앞서 진행된 ‘심야식당’ 제작발표회 당시 홍윤희 작가는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맛이 한국판의 매력이라고 했다. 진짜 비교가 시작된 셈이다.

‘심야식당’은 한국 드라마 시장에선 시도하지 않은 ‘30분 시추에이션’물로 구성한 ‘실험적인 콘텐츠’다. “요즘처럼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는 상황에서 시추에이션물은 거의 없다.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장르에 녹여 콩트식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포맷을 기획했다”(백충화 본부장)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심지어 드라마는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인 12시에 맞춰 심야시간에 편성됐다. “흔한 로맨스도 사극도 아니고, 행간을 읽어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드라마”이기에 “채널을 돌리다 보는 것이 아닌 찾아보는 시청자에게 더 큰 매력을 전할 수 있을 것”(박기홍 SBS 편성기획팀장)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적적인 시청률을 살펴보니, ‘찾아보는 시청자’는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시청자는 평론가 이상으로 꼼꼼하고 정교했다.

백충화 본부장은 “‘30분 시추에이션’물이라는 새로운 포맷, 기존 TV드라마와는 다른 서정적이고 연극적인 연출에 대한 생경함, 첫 회 당시 연기자들의 어색한 호흡이 시청자에게 보인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중편영화 20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촬영 중”이라며 “매회 다른 에피소드가 진행되니 새로운 형식 안에서 따뜻한 이야기와 코미디ㆍ호러ㆍ멜로 등 다양한 장르의 재미가 차차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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