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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한ㆍ일 세계유산 외교전…A에서 Z까지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조선인 징용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벌어진 한국과 일본의 줄다리기는 5일로 종지부를 찍었다.

양국은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등재 결정문에 반영했다.

이 회의에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내용은 일본 정부 대표단의 발언록과 주석(footnote)이라는 단계를 거쳐 등재 결정문(Decision)에 반영됐다. 주석 방식은 결정문 본문에 들어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이 요구한 사항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한국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던 일본이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한 시점은 지난 21일 한ㆍ일 외교장관회담이었다. 일본은 이 회담 직전에 해당 시설의 방문자 자료 등에 강제동원에 대한 내용을 반영하는 안을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 제시했다.

양국 외교장관이 큰 틀에서의 합의를 마치자마자 한국측 수석대표인 최종문 외교부 교섭대표는 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최 교섭대표는 다음날 바로 도쿄로 건너가 일본측 신미 준(新美潤)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 겸 스포츠담당대사와 3차 협의에 나섰다.

1~2차 양자협의 때까지만 해도 타협하지 않겠다던 일본의 태도가 변한 데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전 방위적인 외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화유산의 사전심사를 담당하는 ICOMOS는 해당 시설에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도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일본은 등재 추진 당시 해당 시설의 역사를 1850년부터 1910년까지로 한정하려고 했지만, 이 권고사항은 1940년대 집중된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후 한국은 최종 결정권을 쥔 21개 위원국 중 한ㆍ일을 제외한 모든 국가를 상대로 전 방위적인 외교에 나섰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한국의 정당한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양국 중 한 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에 표결보다는 양자간 협의를 권유했다.

이 가운데 과거 한국과 같은 국권침탈을 겪은 국가들은 공개적으로 한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 의장국인 독일측이 등재 찬성을 호소하러온 일본에 “독일은 이웃 나라와 화해해왔다, 일본도 노력해달라”고 말한 것은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양국은 등재결정 직전까지 막판 협상을 이어갔다. 당초 4일 이뤄질 예정이었던 등재 심사 및 결정은 ‘강제 노동’이라는 표현을 두고 한ㆍ일간 입장차가 드러나면서 하루 뒤인 5일로 미뤄졌다.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하시마(端島) 탄광 등 7개 시설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강제로 일했다는 점을 명확히 하려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강제’라고 표현하는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의장국인 독일을 비롯해 위원국들 사이에 등재 심사를 차기 회의로 미룰 수 있다는 의견이 확산되면서 한ㆍ일이 극적으로 막판 타협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한ㆍ일은 5일 ‘조선인 강제노역’ 관련 역사적 사실을 주석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밝히는데 합의했다. 협의 과정에서는 일본의 후속조치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일본은 2017년 12월1일까지 세계유산위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세계유산센터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경과보고서는 2018년 열리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된다.

이로써 해당 시설에 대한 등재안은 21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우리의 원칙과 입장을 관철시켰다”며 “그 과정에서 한ㆍ일 양국간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냈기 때문에 앞으로 양국관계의 안정적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na@heraldcorp.com



<사진=헤럴드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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