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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메르스도 못막은 야쿠르트 아줌마의 情
-전미순 씨, 메르스로 지친 고대구로병원 의료진에 야쿠르트로 마음 전해 화제
-“30년 남짓 병원과 함께 했죠…병원 직원들이 동생 같고 아들딸 같습니다”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병원 개원할 때부터니까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네요. 매일 출퇴근을 병원으로 하다보니 내 직장 같이 푸근하죠.”

‘야쿠르트 아줌마’ 전미순(65) 씨는 지난달 29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고생하는 고대구로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에게 야쿠르트로 마음을 전했다. 전 씨가 야쿠르트 300개를 병원에 전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야쿠르트 강서지점은 추가로 2000개를 더 병원 측에 전달했다.

얼떨결에 고대구로병원 백세현 병원장까지 만난 전 씨는 “가족 같아서 야쿠르트 하나 건넨 것인데, 무슨 큰 일을 한 것처럼 얘기하는 게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쑥스러워했다.

전 씨가 병원 직원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그가 고대구로병원의 시작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1983년 9월 개원할 때부터 담당해서 올해 33년째를 맞았다.

1981년 처음으로 야쿠르트 캐리어를 어깨에 메게 된 전 씨는 “구로구 일대에서 30명이 지원해서 나를 포함해 단 2명만 선발됐는데, 당시에는 조건도 까다로웠다”며 ‘야쿠르트 아줌마’로서의 자긍심을 내비쳤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던 시대였던 터라 한국야쿠르트는 회사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여러 채용 조건을 달았다.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있어야 하고, 키가 너무 크면 유니폼을 입었을 때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꺼려했다.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한 편견도 있어 안경 착용자 역시 야쿠르트 아줌마가 될 수 없었다. 요즘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채용 조건들이지만 당시엔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해야만 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전 씨가 야쿠르트 아줌마에 지원할 때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교육보험을 들기 위해 5년 동안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35년이나 흘렀고, 이젠 ‘야쿠르트 할머니’가 됐다.

“고대구로병원이 개원하기 전에는 구로경찰서를 담당했는데 지금 병원 자리에는 ‘병원부지’라는 팻말만 덩그러니 서 있었습니다. 건물은 한 동뿐이고 매점은 공간이 마땅치 않아 건물 밖에서 노점 형태로 운영이 됐죠.”

전 씨는 예나 지금이나 아침 6시에는 병원 근처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 그날 배달하고 판매할 제품들을 챙겨 7시 전에 병원에 도착한다.

병원을 1층부터 돌면서 정신없이 제품을 배달하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시원시원한 말투에 병원 직원들과도 격의없이 지낸다. 개원때부터 근무했던 이들 중에 마음 맞는 직원들과 저녁 식사도 가끔 하곤 했는데, 그 멤버 중에는 이미 퇴직한 이도 있다.

추억의 라면 ‘도시락’이 1986년 처음 출시됐을 때는 의료진과 직원들이 라면을 먹으면서 농담조로 던진 “라면 먹는데 김치 없으면 허전하지”라는 한마디에 김치를 직접 담궈주기도 했다. 병원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전 씨는 주변 민원을 처리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지금은 전화로 예약이 되지만, 80~90년대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직접 접수해서 접수증을 갖고 내원해야 했다. 지인 중에 누가 병원 갈 일 있다고 하면 대신 접수증을 받아 전달해 주기도 했다.

전 씨가 취급했던 야쿠르트는 초창기 1종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30종에 이른다. 동료들 중에는 전기카트를 타고 다니지만, 전 씨는 수십종의 제품을 캐리어에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닌다.

“병원 내에서만 이동하기 때문에 굳이 전기카트가 필요없어요. 애들이 힘들다고 그만두라고 하지만, 운동 삼아 하는 거라고 고집을 부리다보니 이젠 애들도 더 이상 그만두라는 얘기를 하지 않네요.”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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