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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패션업계 ‘갑’은 누구인가요?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연합회를 배제하고 몇몇 디자이너와 개인적인 소통을 통해 이런 절차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관의 전형적인 갑질이다. 절차와 규칙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정을 따를 수는 없다”

지난 6월 30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회장 이상봉ㆍ이하 연합회)가 긴급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이근ㆍ이하 재단)이 오는 10월 개최될 ‘2016 S/S 서울패션위크’부터 참가 디자이너 기준을 확 바꾼데 대해 연합회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6월 27일 주말 본지 인터넷판,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과의 단독 인터뷰 기사에서 새 판을 짜고 있는 서울패션위크에 대한 내용이 발표된 이후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는 양상입니다.

연합회는 달라진 참가비(종전 700석 기준 25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인상)와 참가 디자이너 자격 조건(디자이너가 사업자 대표 또는 공동 대표여야하고 자가 매장을 보유해야 한다 등)에 대해 강력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패션위크와는 별도 행사를 치르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연합회가 재단과 대립각을 세우며 내건 수사는 ‘관의 갑질’, ‘소통 부재’였습니다. ‘딱지’를 받는 순간 덮어 놓고 비난받게 되는 수사가 바로 “갑질했다”, 혹은 “소통을 하지 않았다”입니다. 성희롱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덮어 놓고 성범죄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강도인거죠.

패션 유관 언론은 일제히 연합회 쪽 입장을 실어주며 갈등 구도를 부각시켰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서울패션위크 반쪽짜리 된다는 겁니다.

재단 측은 이날 오후 250여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에게 긴급 공지했습니다. 3일 오후 2시 동대문 유어스빌딩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서울패션위크 참가비 및 참가기준 변경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위해 간담회를 갖는다는 내용입니다. 이 자리에 정구호 총감독이 직접 나섭니다. 현 사안을 정면돌파하겠다는 겁니다. 서류 접수 마감은 간담회 이후인 6일까지로 일단 연장된 상태입니다.

재단에 물었습니다. 연합회가 밝힌 것처럼, 정말 연합회 회원 350명 대다수가 패션위크를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인가. 현재까지 패션위크 참가 신청을 한 디자이너들은 누구인가 말입니다.

재단 측은 현재 40명 가까운 디자이너들이 신청을 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지춘희, 박윤수를 포함, 그간 서울컬렉션에 참가했던 주요 디자이너들이자 현재 패션업계에서 가장 ‘핫’하다고 평가받는 젊은 디자이너들 대다수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구두로만 참가 신청을 해 놓은 디자이너들도 있다는군요. 이 내용으로만 보면, 연합회의 말처럼 ‘서울패션위크 보이콧’은 현재까지 연합회의 대동 단결된 행동 지침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젊은 디자이너들은 다 디자인재단을 지지할거예요. 동료 디자이너에게도 이야기했어요. 서울컬렉션이 발전해야 우리도 윈윈할 수 있으니 유능한 스타 디자이너들은 꼭 이번에 서울컬렉션 신청해야 한다고요.”

박내선 서울디자인재단 팀장이 한 디자이너에게 받았다며 문자 내용을 캡처해 기자에게 보여 줬습니다. 디자이너 한 명의 말이지만 많은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연합회는 달라진 서울컬렉션 기준이 (참가비를 감당하기 힘든) 신진 디자이너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데, 왜 신진 디자이너들은 재단을, 즉 ‘갑질하는 관’을 지지한다는 걸까. 왜 연합회의 많은 회원 디자이너들은 선배들과 등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서울컬렉션 참가 신청서를 냈을까.

사안이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아직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서울패션위크 개최도 넉달 정도가 남았고요. 그런데 분명하게 드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울 시민이 낸 돈으로 ’서울패션위크 비즈니스‘를 해 온 디자이너들이 서울 시민에게 되돌려 준 것은 무엇이었나. 한류 3.0 시대를 주도하는 K패션을 그들이 책임지고 있었나. K패션이 뭐기에.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기에….

사실 서울컬렉션은 서울 시민은 커녕, 패션과 관계없는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쇼입니다. 티켓 소지자, 즉 패션 전문 언론과 바이어, 디자이너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인거죠. 원래 디자이너 그들만의 잔치였고, 그들만의 잔치인 게 사실상 맞습니다. 단지 서울패션위크는 서울시가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드는 쇼이기 때문에 다른 해외 다른 패션위크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겁니다.

재단이 손질한 새 기준은 서울패션위크 비즈니스를 할 디자이너들은 쇼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과, 제반 비용을 어느 정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이 기준이 향후 서울패션위크에, K패션에 어떠한 발전을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상식의 선에서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판단입니다. K패션이라는 명분 하에, 언제까지나 우는 아이 젖 주듯, 디자이너들을 서울 시민이 키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나저나 갑질하는 관이라는 말을 들으니, 또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진짜 패션업계의 갑은 누구였는가. 해외 패션박람회 등에 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디자이너들은 누구였던가. ‘갑질’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이제는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열정페이’, 그 시작은 누구였던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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