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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미군 70년> 한미동맹 역사의 빛과 그림자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1945년 광복과 함께 들어온 미군의 역사가 70년으로 접어든 가운데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이 1일 한반도 연속 주둔 50주년을 맞이했다.

미 2사단은 6ㆍ25전쟁 중이었던 1950년 7월23일 부산을 거쳐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6ㆍ25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되고 1년여 동안 전후 복구작업을 지원하다 1954년 8월 20일 미국으로 되돌아갔지만, 북한군의 도발위협이 고조되자 1965년 7월1일 다시 돌아왔다.

주한미군의 주력인 미 2사단은 한미동맹의 근간으로 정치ㆍ경제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시에 주한미군범죄 등 빛과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미 2사단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에서 강한 전쟁억지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사시 경기도 문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북한의 남침 경로에 주둔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 조항이 없는데 2사단이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음으로써 인계철선 역할을 하고 미국 입장에서는 자동개입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자동개입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북한이 항상 각종 기구와 매체를 동원해 한미동맹을 언급하면서 주한미군을 비난하는데 이는 역으로 주한미군의 존재가 가장 부담스럽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정경영 동아시아국제전략연구소 소장은 “주한미군 주둔의 의미에서 전쟁억지력 확보와 함께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면서 “국방비를 절감해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됐으며 신군부에 대한 압박 등을 통해 민주화에 직ㆍ간접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미8군 전경
이외에도 주한미군 군사시설 건설에 290여개의 한국업체가 참여하고 82개 업체가 군수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등 추가적인 경제적 효과도 적지 않다.

반면 미 2사단이 남긴 상처도 동시에 거론된다.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윤금이 씨 살해사건과 2002년 여중생 미선이ㆍ효순이 사건 모두 2사단 소속 장병에 의해 발생했다.

주한미군범죄는 현재까지도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 논란을 야기하는 골칫거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범죄만큼이나 주한미군 주둔에 따른 지나친 미국 의존도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 소장은 “주한미군의 긍정적 측면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주한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드는 측면도 강했다”며 “미국에 의존하다 보니 스스로 안보를 챙겨야 한다는 자립안보 의식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산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게 변수지만 미 2사단이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되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일 수 있다”며 “군과 정책결정권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우리 손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다 중국과 일본이 현재 군사력 증강 추세를 뚜렷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떤 형태의 통일이냐는 문제가 남지만 한반도 힘의 균형 차원에서 제한적인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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