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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X파일]삼성 기술 담긴 車를 한국에서 못 타는 이유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한국 소비자들이 이 차를 탈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최근 오스트리아 키츠뷔엘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관계자의 말입니다. 벤츠의 새로운 프리미엄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시승행사에서 P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인 ‘GLE 500e 4MATIC’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국내 출시 계획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No’였습니다. 

GLE 500e 4MATIC 충전하는 모습과 내부 계기판 장면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PHEV에 대해 제공하는 보조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친환경차 수요가 는다고 해도 보조금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비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어 시장에 내놓아도 외면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GLE 500e 4MATIC 충전하는 모습과 내부 계기판 장면

그렇다면 국내 PHEV 보조금은 해외에 비해 얼마나 낮을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PHEV에 제공하는 보조금은 500~800만원 수준입니다. 반면 국내의 경우 100만원에 불과합니다. 개별소비세 130만원, 취등록세 140만원, 도시철도채권매입 40만원 등 세제감면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국내 소비자가 PHEV를 살 때 얻는 지원금액은 아무리 많아야 400만원 수준으로 해외에 비해 최대 절반 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PHEV 보조금이 100만원에 불과한 것은 일반 하이브리드 차량과 똑같이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PHEV는 가전처럼 플러그를 차에 연결해 전기를 충전한 뒤 일정 거리를 순수 전기 모드로만 주행하다 전기에너지가 소진되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전환되는 방식입니다.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기술적으로 상위의 개념이고 순수 전기 모드로 평균 30㎞ 정도 달릴 수 있어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획기적으로줄일 수 있습니다. 대신 제조 비용이 더 많이 들어 가격도 PHEV가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비쌉니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 기준으로는 PHEV와 하이브리드 차량은 동급입니다. PHEV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기존 하이브리드 차량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자동차 기업들이 PHEV를 쏟아내는데 이를 따라가지 못한 늑장 행정이 주된 원인입니다.

이에 똑같은 모델인데 BMW의 i8 유럽 연비는 47.6㎞/ℓ이지만 국내 연비는 13.9㎞/ℓ에 불과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유럽 기준 49g/㎞로 국내 123g/㎞과 차이가 큽니다.

포르쉐의 카이엔 SE-하이브리드도 미국 연비 기준으로 29.4㎞/ℓ,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9g/㎞인데 국내서는 각각 9.4㎞/ℓ, 188g/㎞로 표기됩니다.

이처럼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자 환경부는 내년부터 PHEV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올리려고 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경기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출예산을 늘리기 쉽지 않고, 감액 기조로 이어진다면 기대 수준의 보조금 예산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벤츠 GLE 500e 4MATIC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PHEV의 국내 출시도 상당 부분 막힐 수 있습니다. PHEV출시를 앞두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의욕도 꺾이게 됩니다.

나아가 PHEV에 들어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팩 기술을 국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데도 정작 국내 소비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삼성SDI와 LG화학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기자가 시승했던 벤츠 GLE 500e 4MATIC에도 삼성SDI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삼성SDI는 지난 2월 세계 4위 자동차 부품회사인 마그나 슈타이어로부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팩 사업을 인수했습니다.

시승을 하려고 차에 오르는데 벤츠 관계자는 “삼성 기술이 들어간 차인데 정작 한국 소비자들은 못타서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눈앞에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풍경이 펼쳐졌지만 운전하는 내내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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