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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최정호]황금알 낳기도 전에 배 가르기
거위 새끼가 한마리 있다. 이 거위는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거위를 잘 키워 하루에 한 개씩 황금알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기다리는 것 자체가 싫다. 1년 후 황금알 몇 알 보다는 당장 기름진 밥상이 더 입맛을 돋군다. 크기는 좀 작을지 몰라도 저 배를 가르면 나름 쏠쏠하게 황금 알 종자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동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그것도 최첨단을 달린다는 통신과 콘텐츠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바일IPTV 이야기다. 최근 이통 3사의 모바일IPTV 초기 화면에는 “지상파 서비스 중단 안내”라는 문구가 떠있다. 한마디로 더 이상 스마트폰으로 MBC, KBS, SBS를 실시간, 또는 VOD 모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상파의 스마트폰 ‘블랙아웃’이다.

블랙아웃 배경에는 돈이 놓여있다.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모바일IPTV 건당 지상파 콘텐츠 가격을 1900원에서 3900원으로 2배 올려달라는 지상파의 요구가 나왔고, 이통 3사는 이를 거절했다. 통신 시장 성장이 멈추고, 이 와중에 통신료 인하 압박까지 받고 있는 이통사 입장에서는 모바일IPTV의 원가를 더 늘릴 수 없는 노릇이다. 반면 지상파 입장에서는 “우리 때문에 지금까지 돈 벌었으니, 그 댓가를 제대로 쳐달라”며 맞서고 있다.

핵심은 모바일IPTV의 상태다. 모바일IPTV가 잘 커서, 이제 하루에 한 개씩 황금알을 낳는 성년의 황금거위라면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 방송국의 주장은 타당하다. 세상이 변해서 지상파 막장 드라마보다는 미드를 즐겨보고, 또 케이블 방송사의 드라마 시청률이 동시간 지상파보다 높게 나오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채널은 지상파다. 이 점은 통신사들도 공히 인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바일IPTV는 아직 새끼 거위다. 배 속에는 앞으로 황금알이 될 수 있는 씨앗은 있지만, 황금알을 보기 위해서는 좀 더 고급 사료를 먹고, 도움이 필요한 새끼다. 이통사의 모바일IPTV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또는 사업부들은 여전히 3사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로부터 받는 수입은 5000원에서 1만원인데, 이를 위해 들어가는 콘텐츠 가격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모바일IPTV를 즐기는 유료 시청자가 매년 꾸준히 늘고있고, 또 이들 상당수가 유료 VOD를 구매하는데 지갑을 열기 시작한 점이 위안이다.

“무조건 돈 더 줘라. 안그러면 당장 끊겠다”, “끊어라, 우리는 더 못준다”가 지상파, 그리고 이통사가 지난 몇 달간 펼친 가격 협상의 전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배수진’만 보인다.

우리나라 모바일IPTV 소비자들에게는 불행히도 대안이 많다. 구글의 크롬케스트도 있고, 케이블TV의 드라마도 더 재미있다. 미드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한 번 빠져나간 소비자를 다시 불러와 황금알을 낳는 다 큰 거위로 만드려면 지금까지 드린 노력에 몇 배는 더 필요하다. 방송사, 이통사, 그리고 시청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양보의 협상’을 기대할 뿐이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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