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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산다’ 박정범 감독 “촬영 과정이 영화 ‘산다’ 같았다”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영화 ‘산다’(감독 박정범ㆍ제작 세컨드윈드필름, (유)산다문화산업전문회사)의 제목 앞엔 생략된 문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의 카피처럼 ‘살 수가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서 대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산다’는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집을 온 몸으로 떠받치는 듯, 남루한 삶을 힘겹게 버텨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제13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 제 67회 로카르노 영화제 청년비평가상 등을 수상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박정범 감독(39)은 ‘무산일기’(2010) 등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연기와 연출을 모두 소화했다. 카메라 앞에선 연출에 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정철’의 삶에 몰입했다. 정철은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와중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누나를 대신해 어린 조카까지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스크린 속 박정범 감독의 얼굴엔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외국에서도 사실주의 영화에 일반 배우들을 많이 쓰잖아요. ‘무산일기’ 때도 연극배우 두 분 빼고는 다 일반인이셨어요. 제가 연출하는 건 아무래도 제가 직접 연기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때리고 맞는 장면이 있으면 실제로 때리고 맞고 해야 하는데, 그걸 배우에게 주문하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내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어요.”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한 작품에서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건 막연히 짐작한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일이었다. 박 감독은 체력적인 이유보다는 정서적으로 힘든 장면 때문에 후유증이 컸다고 말했다. 몰입해서 연기하다 보면 컷 사인이 내려진 뒤에도 한동안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한다. 그 감정을 금세 털어내고 다른 상황에 뛰어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연출자로서의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 끊임 없이 현장을 살피고 생각을 짜내야 했다. 도끼를 세워두는 게 나을 지, 장작을 어떻게 쌓아둬야 할 지,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경쓰다 보니 피로도는 연기 못지 않았다.

‘산다’에는 박정범 감독 뿐 아니라 그의 친아버지인 박영덕 씨도 출연한다. 박 감독의 단편 ‘125 전승철’(2008)과 ‘무산일기’에 이어 세 편 째 아들의 작품에서 연기하게 됐다. 박 감독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은 연기를 기대하며 아버지를 처음 촬영장에 세웠었다.

“이번에 아버지가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단편을 찍을 때는 ‘아들이 연출이고 여기서 대장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편하게 하셨죠. 그런데 갑자기 스태프도 많아지니 힘들어 하셨어요. 게다가 제가 대본을 거의 당일에 드렸는데, 대사는 예전보다 훨씬 길어졌는데 연습할 시간은 없으니 당황하신 거죠. 아들한테 혹시라도 누가 될까봐 진짜 열심히 연기해 주셨는데, 제가 물리적으로 시간을 너무 적게 드려서 죄송했어요.”

사진=영화 `산다` 스틸컷

박 감독의 아버지는 카메라 밖에서도 촬영에 필요한 세트장을 직접 짓는 등 힘을 보탰다. 어머니 역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먹을 삼시세끼 밥을 해 나르며 아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체육교육학과를 나온 박 감독이 돌연 영화를 찍겠다고 나섰을 때에도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이었다. 아들이 뭘 하든 열심히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다’의 배우 및 스태프들은 두 달 반 가량 54회 차에 달하는 촬영 일정을 소화했다. 박 감독은 숙소에 돌아와서도 새벽 3~4시에야 잠들었다. 체력엔 자신 있었던 그가 태어나서 처음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1시간 여 분량의 후반부는 미처 영화에 담지 못했다. 러닝타임 너댓시간짜리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주위에선 ‘그렇게 완성된 것 또한 이 영화의 운명’이라고 그를 다독였다.

“이 영화를 찍는 과정이 영화 ‘산다’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찍는 중에 힘든 일이 계속 벌어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원인이 저한테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날 때쯤 ‘내가 사람들을 극한까지 몰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장면에서 ‘오케이’ 사인을 내리는 걸 굉장히 힘들어 하는 편이예요. ‘오케이’ 한다는 게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가장 비슷한 장면을 찾았을 때 가능한 건데, 나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늘 기대했던 거죠. 이제는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게 어떤 건 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박정범 감독은 앞으로의 계획을 ‘나의 세계관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음 작품은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들보다는 밝은 휴먼 드라마를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무산일기’ 인터뷰 당시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결국 ‘산다’가 나왔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박정범 표 영화’가 기다려지는 한편, 그가 선보일 한층 밝아진 휴먼 드라마도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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