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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德不孤’<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실천하는 팔방미인 변호사
로펌 운영·軍포로송환·公기관 고문 등 1인多역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광폭행보, 그의 남다른 철학은…
순한 인상, 작은 체구,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표정의 김현(60) 변호사는 법으로 사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후기 모더니즘’ 시파(詩派)의 문을 연 고(故) 김규동 시인의 차남이라 문학인 DNA까지 배어있다. 이런 이미지의 김 변호사는 오로지 법률가라는 한 길에만 매진할 것 같다. 나아가 그에게 ‘오지랖’이라는 단어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오지랖은 ‘저고리의 앞자락’을 뜻한다. 어머니가 제 아기 젖 주는 것도 모자라 옷고름을 자주 풀어 굶주린 남의 집 아기까지 젖 먹이는 모습에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나왔다. 어원을 음미하다 보면 이 말은 박애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는 대한변협 변호사원수원장과 사단법인‘ 물망초’ 산하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위원장 등 20개가 넘는 직함을 보유하는 등 드넓고 왕성한 공익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선친인 김규동 시인의 이웃사랑 가족사랑 마음을 배우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좌우명을 정했다고 한다. 김명섭 기자/msiron@

김 변호사의 드넓은 활동 반경은 먼저 법률가라는 자기 직역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는 국내 최초 해상법 전문가이다. 왜 바다인가.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후략)’

선친 김규동 시인이 스승인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이 시에 크게 감동 받고 나서, 속편이라 할 만한 ‘나비와 광장’을 발표한지 몇 달 후 김변호사는 태어난다.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뒤 선친의 뜻을 이어 ‘바다를 헤매던 나비의 아름다운 영토’를 찾아주겠다고 다짐하면서 바다 정복을 꿈꾼다. 이는 김 변호사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해상법’을 파게 된 정서적 뿌리이다. 여기에 은사인 송상현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의 해상법 명강의가 그의 진로 선택에 화룡점정을 찍어준다. 그는 변호사만 17명을 거느리는 법무법인 세창의 대표이다. 법률가 모임에서는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이후 지금은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연수원장을 맡고 있다.

해상법 전문법률가로 출발했다가 24년간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는 해양수산부가 한때 국토 업무 부처와 한솥밥을 먹는 형태로 개편된 것을 계기로, 법률서비스의 반경을 교통, 건설, 국토개발, 부동산으로 확장한다. 공공기관 사이에 “그 양반 일 하는 게 빠르고 정확하대”라는 정보 공유가 이뤄지면서 농림수산식품부까지 고문으로 위촉돼 정부 3부처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착한 변호사’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반 형사, 민사 사건 의뢰인의 일까지 대리한다. 자신의 옷고름을 더 풀어 수많은 새내기 법조인을 키우는데도 나섰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3년간 역임했고, 지금은 성균관대와 인하대 로스쿨 겸임교수로 일한다.

“몸이 몇 개이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 하다. 착하기만 할 것 같은 인상의 김 변호사에게 이같은 팔방미인의 면모는 그야말로 ‘반전 매력’이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안으로는, 자녀와 토론하고 가족에게 요리해 주는 것을 즐기며 천막 둘러메고 바다로 소풍 다니면서도, 밖으로는, 시를 쓰고 비민주적인 모습이 있을때 저항하며 스승과 이웃, 벗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선친 김규동의 가르침이 대를 이어 확대재생산되었다고나 할까.

사람을 좋아하는 김규동 시인-김 변호사 부자 DNA의 일면을 보자. 김 시인은 함경북도에서 활동하다 서울에 가 있던 스승 김기림이 “보고싶다”고 하자, 그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갔으나 때마침 38선이 가로막히면서 모든 가족을 북에 둔채 홀로 남쪽에 남았다.

다행히 북에 있을때 ‘소개팅’을 했다가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헤어졌던 평양의전 졸업생 강춘영씨와 서울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해, 힘들었던 부산 피난시절 쪽방에서나마 뜨거운 사랑을 꽃피우고 결혼에 골인했기에 갑작스런 실향의 아픔을 달랠수 있었다. 김 시인의 뜻을 보고 배운 김 변호사의 첫번째 좌우명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이다.

김 변호사가 법조계 이외 마당에서 벌이는 공익활동 중에서 가장 큰 일은 국군포로에 대한 송환과 예우 등 남북한 간 현안을 민간차원에서 풀고, 실향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이 사업은 2012년 창립된 사단법인 ‘물망초’가 진행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단체의 임원이자, 하부조직인 국군포로송환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한국전쟁때 2만명이 포로로 끌려가 고초를 겪다 80명이 탈북하셨고, 이 중 41분이 남한에 살아계시며, 아직 북한에는 500여 국군 포로가 힘겨운 나날을 보내신다”면서 “이 분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일을 생각하면, 남한에 거주하시는 41분에게는 전원 훈장을 드리고, 돌아가신 분께는 추서하며, 북에 계신 500분에 대해서는 남북 당국 간 협상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북자의 초기 안전을 돌보기 위해 중국 단둥과 투먼에 한국영사관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김 변호사는 올들어 한국도로공사 안전경영위원장을 맡았다. 이왕 수락한 자리이니, 우리나라 고속도로가 아우토반 만큼 안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안전관리 문화를 착근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포스코 청암재단 ▷가나안학교로 유명한 일가재단 등의 봉사상 심사위원 ▷유방암 줄이기 캠페인 ▷‘핑크리본’ 행사로 잘 알려진 대한암협회 이사 ▷바른 먹거리운동 ▷실향민 3세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함북장학회 이사 ▷부처 장관들이 대거 참가하는 민관 협의체 ‘독도지속가능이용위원회’ 민간위원 ▷방글라데시 어린이 2명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 ▷소비자 권익 증진 운동을 벌이는 사단법인 ‘소비자와 함께’ 공동대표 ▷수자원 보존 및 자원화 활동을 벌이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비상임이사 ▷종편의 공정선거방송위원회 위원 ▷대원외고 학교운영위원 ▷워싱턴대 한국동문회장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사재를 터는 일인데, 흔쾌히 응하는 이유는 그의 남다른 인생철학에 있다. ‘내 손 끝 닿는데 까지’, 즉 ‘짧은 인생, 내가 할 수 있는 최대값으로 살기(Life Maxmizing)‘이다. 그는 “남을 도와준 경험이 있는 분들은 그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줄 잘 아신다”면서 “유한(有限)한 삶 속에 자기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더 큰 보람을 얻을 수 있다면 이것 만큼 기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성장과정을 돌아보면 아픔도 적지 않다. 보통 힘겨운 여정을 거쳐 일정한 성공의 반열에 오르면, 어떤 사람은 마치 지난 날 고통의 반대급부를 탐하 듯 높은 사회적 지위를 열망하는데 비해, 다른 부류는 힘겨운 과정을 겸양과 나눔의 밑거름으로 삼기도 한다. 김 변호사는 어떨까.

성장 환경은 평화롭지만 그는 12세때 중학교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6학년을 두 번 다니는 청강의 시련을 맞는다. 어느날 담임교사가



“내일 교육청 장학사 시찰오는 날이니 현이는 학교 오지마”라고 하기에 부모님에게 말도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도시락을 싸들고 집을 나서 시내를 배회했다. ‘재수(再修)를 안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12살 재수생의 마음은 스무살 대입 재수생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수’는 그 후로도 반복돼 인생을 단련시켰다. 대입 재수를 필수로 거친 김 변호사는 대학시절인 1977년 한 집회에 참가했다가 유기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 족쇄가 됐다.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도 전례없이 면접에서 떨어진다. 이듬해 재면접에서도 낙방한다.

1982년엔 사법시험 14회에 합격했지만 또 면접에서 분루를 삼킨다. 유학을 결심하고 국비유학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여기서도 이례적으로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다. 유학을 떠났다가 이듬해 재면접때 ‘혹시나’ 해서 급거 귀국해 “나라를 위해 해양전문가의 꿈을 키운다”는 뜻을 얘기하고서야 사시 25회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은 유학을 마친 이후 17기로 수료한다. 14기가 됐어야 할 그였다.

김 변호사는 “어떨 땐 낙담하고 절망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 할아버지-아버지-나로 이어진 ‘사랑’의 힘이 끊임없이 내게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 같다”고 말한다. 세창은 자상했던 할아버지의 병원이름이다. 좌절할만 한데도 ‘사랑’은 그의 삶을 지탱한다. 그의 드넓은 행동 반경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 아닐까. 그의 두번째 좌우명 덕불고(德不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출처:논어) 역시 대를 이은 사랑의 결과물이다.

로펌 운영, 즉 의뢰인과의 관계에서도 김변호사의 방식은 다르다. 구성원의 기본 철학은 ‘원숭이론(論)’ 즉, ‘멍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라는 미국의 고품질 법률서비스 기준에 맞췄다. 의뢰인이 원숭이 한 마리를 지고 낑낑대며 로펌을 찾았다가 그 무거운 원숭이를 로펌에 툭 던지고 가볍게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로와 빠른 해법 제시가 수반된다.

의뢰 사건에 대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는 ‘의견서’ 업무와 관련, 다른 법률사무소가 꼼꼼하게 점검해 일주일 만에 99점짜리를 내놓는다면, 김 변호사팀은 하룻만에 90점짜리를 신속히 제공한다. 나머지 10점은 법률대리하면서 채워나가되, 의뢰인에게 희망을 주고 변호사의 계획에 맞춰 의뢰인이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아울러 의견서와 사건처리 개요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손쉽게 검색하도록 했다.

김 변호사는 “의뢰인의 황망한 정서를 보듬고,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절박감이 있는 만큼 되도록 빨리 정보를 제공하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별 하나가 빛나면 하늘 전체가 밝아진다’는 말을 세번째 좌우명으로 삼는다. 하나만 빛나면 되니까, 그가 높은 곳 보다는 낮은 데로 향하는 이유이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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