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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패션부터 반도체까지…미국의 1세대 코리안 거상들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ㆍ김현일 기자, 김성우 인턴기자]1980년대 서울 명동에서 커피를 나르며 생계를 유지하던 한 20대 청년이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그리고 30년 후, 어느덧 50대가 된 그 청년은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명단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포에버21 창업자 장도원 회장은 LA의 20평 남짓한 작은 옷가게를 연매출 4조원의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키워내며 한인 이민자들에게 희망이자 롤모델이 됐다. 현재 부인 장진숙 씨와 함께 보유한 자산은 61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미국 땅에서 억만장자의 타이틀을 거머쥔 건 장도원 회장 부부가 처음은 아니다. 장 회장보다 한 시대를 앞서 미국에서 성공신화를 쓴 ‘1세대 코리안 거상’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최초의 한인 억만장자는 이미 30여년 전에 탄생했다.

▶미군 하우스보이, 1세대 IT부호로 인생역전=장 회장이 LA에 옷가게를 낼 준비를 할 무렵 한인 사회에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진다. 1983년 포브스가 발표한 미 400대 부호 명단에 한국인 사업가가 포함된 것이다. 그 이름은 ‘규빈 필립 황(Kyupin Philip Hwang)’, 황규빈이었다.

황규빈(79) 회장은 1975년 컴퓨터회사 텔레비디오(Televideo)를 창업한 지 8년 만에 한국계 기업으론 최초로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며 큰돈을 손에 쥐었다. 포브스 부호 명단에 진입할 당시 자산은 6억달러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2억3000만달러)보다 세 배나 많았다. 이후 회사 가치가 20억달러까지 치솟으면서 황 회장의 주식 자산도 12억달러까지 늘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우스보이’였던 그는 카투사에서 군복무 중 만난 미군 병사의 도움으로 유타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해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50달러만 들고 미국땅을 밟은 황 회장은 접시닦이와 화장실 청소 등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단돈 9000달러로 설립한 텔레비디오는 게임용 모니터와 PC끼리 자료를 주고받는 PC네트워크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1980년대 돌풍을 일으켰다.1970년대 컴퓨터산업 붐을 타고 실리콘 밸리에 수많은 IT기업이 들어섰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잡스의 애플 그리고 황 회장의 텔레비디오, 단 두 곳뿐이다.


▶대학교수 관두고 반도체로 부호된 아남그룹 2세=2001년에 IT분야에선 또 한 명의 한인 억만장자가 탄생한다. 바로 김주진(78ㆍ미국명 제임스 김) 앰코 일렉트로닉스(Amkor Electronicsㆍ이하 앰코) 회장이다. 김주진 회장의 당시 자산은 22억달러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6억달러)보다 많았다.

김 회장은 1955년 이민을 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 김향수 전 아남그룹 회장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대학 교수를 관두고 1968년 아남의 반도체 판매를 총괄하는 미국법인 앰코를 창업했다. 1998년 나스닥 상장은 그가 억만장자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현재 앰코의 연매출은 28억달러며 김 회장 일가가 지분 55%를 갖고 있다. 2012년엔 인천 송도에 10억달러를 투자해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생산기지가 건설 중이다.

▶철강 샐러리맨에서 금융회사 오너로 우뚝=나스닥은 거래 시작과 마감을 알리는 벨을 그해 재정 상태와 경영 실적이 우수한 기업 대표에게 맡긴다. 고석화(70ㆍ미국명 스티븐 고) 윌셔은행(Wilshire Bancorp) 회장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오프닝 벨과 클로징 벨을 두 차례나 타종했다.

윌셔은행은 1980년 동포들이 세운 최초의 한인은행으로 출발했지만 1986년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빠졌다. 이때 고 회장은 동포들을 위한 은행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윌셔은행의 주식 26%를 매입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이후 조직혁신으로 반등을 꾀했다. 특히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고수하지 않고, 금융업에 강한 유대인들을 임원으로 대거 영입한 것은 파격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윌셔은행은 7년간 주가가 1700%나 급등했다. 작년 4월 포브스가 선정한 ‘2014 가장 신뢰할 만한 50대 미국 금융회사’에도 뽑혔다.

하지만 그의 전공은 금융이 아니다. 연세대 졸업 후 연합철강에서 근무하던 그는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가 철강회사 퍼시픽 스틸(Pacific Steel)을 창업해 큰돈을 벌었다. 고 회장의 목표는 이탈리아계가 세운 ‘뱅크오브이태리’가 ‘뱅크오브아메리카’로 미국 제1의 은행이 된 것처럼 윌셔은행을 세계 최고의 은행으로 키우는 것이다.


▶미 프로스포츠 장악한 한국계 모자왕=조병태(69ㆍ미국명 토마스 조) 플렉스피트(Flexfit) 회장은 모자왕으로 불린다. 미국인의 40%가 그가 만든 모자를 쓴다.

1974년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코치였던 조 회장은 이듬해 미국 뉴욕에서 샘플 모자를 들고 다니며 영업에 나섰다. 서툰 영어 탓에 처음엔 바이어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버드와이저를 시작으로 포드, GM 등 유명 회사의 로고를 새긴 모자로 대박을 터뜨렸다. 각 기업들은 모자를 탁월한 광고판으로 보고 주문을 쏟아냈다. 메이저리그야구(MLB), 전미농구협회(NBA), 미국프로풋볼(NFL) 등에서의 인기 스포츠 구단들도 조 회장의 모자를 찾았다.

1996년 중국의 저가공세에 대응해 개발한 고탄력 스판 소재의 플렉스피트 모자는 훔쳐가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현재 연간 3500만개의 모자를 만들며 연매출 2억5000만달러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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